2023080301000000500044802

김윤배_-_에세이필진.jpg
김윤배 시인
박제가(1750~1805)는 아버지 박평과 어머니 전주이씨 사이에서 태어난 서자출신이다. 어릴 때부터 글을 좋아해서 읽은 책은 세 번씩 베껴 썼고 언제나 붓을 물고 있다가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었다. '내가 글을 처음 배운 것은 젖을 먹을 때였지'라는 시구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박평은 서자이기는 하지만 만년에 얻은 그에게 각별한 정을 주었다. 본가에서 다른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러던 아버지가 열한 살 때 죽고 한성부의 본가에서 나오게 되면서 거처를 자주 옮겨 다니는 가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다. 과부로 가난하게 살면서 십여 년 동안 좋은 옷을 입어보지 못하고 좋은 음식을 먹어보지 못하고 밤을 새워 삯바느질을 해서 아들의 뒷바라지를 했다.

박제가와 교류하는 사람들 중에는 세상에 많이 알려진 사람이 많았는데 어머니는 가끔 그들을 초청해서 주안상을 차려 극진하게 대접했다. 그의 집에 다녀온 사람들은 후한 대접을 받았기 때문에 집안 형편이 그처럼 빈한한지를 몰랐다. 그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그처럼 컸던 것이다.

서자로 신분·사람 차별하지 않는
박지원 문하에서 많은 인물 교류
자기 주장 강하고 굽힘이 없었다


박제가는 청년기에 우연한 기회에 박지원의 문하에 들어 교류하게 된다. 세상에 눈뜨게 되면서 사회적 천대와 멸시, 그리고 양반제도의 모순에 회의와 불만을 갖게 된다. 이때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 여러 실학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덕무와는 절친한 벗으로 평생을 함께한다.

신분과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박지원 문하에서 여러 동료들을 만나게 되었고 이때 교류하던 인물들 중에 홍대용은 후일 박제가의 문하생이 되는 김정희의 장인 홍담용의 사촌간이 된다. 그는 늘 고민이 많았다. 장인 이관상과 사람을 가리지 않는 박지원의 배려로 전통적인 양반교육을 받았지만 서자라는 신분적인 제약으로 사회적인 차별대우를 받았기 때문에 봉건적인 신분제도에 반대하는 사상이 뿌리 깊었다. 남인인 정약용과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도 그의 이러한 사상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박제가는 빛나는 시인이었다. 그는 박지원처럼 노회하지도 않았고 이덕무처럼 온건하지도 않았고 유득공처럼 무난하지도 않았고 이서구처럼 얌전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발랄하다면 발랄한 것이고 저돌적이라면 저돌적인 그였다. 가는 길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하면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굽힘이 없었다. 문체반정 와중에 정조가 반성문 제출을 요구했을 때도 그는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문학 세계를 주장했다.

그는 네 차례나 중국 연행 길에 올라 중국의 발전한 문물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를 얻었다. 중국에서 만난 많은 지식인들은 허심탄회하게 그의 문학을 인정하고 승인해주었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제대로 된 자신의 문학에 대한 평가를 받고 자기 확신을 확고하게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날개를 펴기에는 현실적인 제약이 너무 많았다. 우선 정조가 그의 문학세계와 지식체계를 미덥지 않게 생각했다.

청년기엔 다양한 분야 책들 섭렵
여러 벼슬 거치며 많은 저서 남겨


1779년 박제가는 서자였으나 적자와 서자를 가리지 않고 등용하려는 정조의 국정운영에 따라 규장각 검서를 시작으로 여러 벼슬을 거치면서 많은 저서를 써냈다. 1986년 음력 1월, 그는 조선 사회를 뒤흔들만한 개혁정책을 정조에게 울렸다. 특히 '북학의'에서 펼친 과감한 통상 개방정책은 시대를 지나치게 앞서간 것이어서 정조의 눈에는 위험하게 비쳤다.

청년기의 박제가는 박지원의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섭렵했다. 그는 유형원과 이익 등의 토지경제사상과 중농사상을 비판하고 청나라의 앞서가는 문물을 받아들일 것과 상업과 공업을 천시하지 말고 국가가 상공업을 발전시킬 시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빛나는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이 글을 마친다. '붉다는 하나의 단어 가지고/온갖 꽃 통틀어 말하지 말라/꽃술엔 많고 적음 차이 있으니/세심하게 하나하나 보아야 한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