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86년 5월3일 토요일. 인천시 남구 시민회관사거리(현 미추홀구 옛시민회관사거리)에서 시민, 학생, 노동자들이 대거 모여 '직선제 개헌' 등을 촉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이날 낮 12시 시민회관사거리를 중심으로 사방에서 수천명 규모로 시작된 시위에 하나둘씩 인파가 몰려 총 5만명이 참가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항쟁 이후 최대 규모 시위였다.
정부는 경찰 1만명을 동원해 이날 밤 10시께 무력으로 집회를 강제 해산시켰다. 인천에서 벌어진 시위는 하루 만에 끝났지만 이듬해 6월 항쟁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6년 '직선제 개헌' 등 5만명 규모 시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 국회 통과
인천5·3민주항쟁을 민주화운동에 포함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인천5·3민주항쟁을 시민과 함께 올바르게 기억하고 계승하는 법적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인천5·3민주항쟁은 이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 이전에도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민주화보상심의위원회가 낸 '민주화운동백서'(2015년)에 따르면 인천5·3민주항쟁 관련 보상 신청 사건 85건 중 73건이 민주화운동으로 의결됐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개정의 성과는 민주화운동 정의에 인천5·3민주항쟁이 포함되면서 사료 수집·보존·전시, 유적 보존·관리, 기념관 건립, 홍보 사업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동력을 얻게 된 것이다. 그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은 '2·28 대구민주화운동' '3·8대전민주의거' '3·15의거' '4·19혁명' '부마항쟁' '6·10항쟁' 등을 민주화운동으로 명시했다.
다른 지역 민주화운동단체에서도 인천5·3민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높게 평가한다. 김동석 부마민주항쟁기념재단 학술·기념사업팀장(마산사무처)은 "민주주의는 진영을 떠나 한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며 "인천5·3민주항쟁이 법적 지위를 인정받으면서 민주주의 가치를 시공간적으로 확장시켰다"고 말했다.
6월항쟁·촛불집회 이어진 가치 인정
기념관건립·홍보 등 추진동력 얻어
인천5·3민주항쟁은 '박제된 역사'에 머물지 않고 '현재적 의미'를 갖는 민주화운동이다. 여러 주체가 모여 각자의 목소리를 분출하는 광장 민주주의의 맹아(萌芽)였다. 이 경험은 1987년 6월 항쟁, 2016~2017년 촛불집회로 이어졌다.
인천5·3민주항쟁은 민주화운동이 '제도적 민주화'(개헌)뿐 아니라 '실질적 민주화'(생존권 보장)에 귀를 기울이는 분기점이기도 하다.
'인천5·3민주항쟁 그날의 이야기'를 쓴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는 "대학원생 시절 취재 목적으로 경험한 1986년 5월3일 시민회관사거리는 집회 참가자들이 따로 흩어져 각자 요구하고 토론하는 광장의 모습을 일부 보여줬다"며 "다양성과 역동성을 생생하게 이해하고 계승할 때 인천5·3민주항쟁의 역사적 가치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 관련기사 3면([광장 민주주의의 맹아, 인천5·3민주항쟁] 폭동 '낙인' 찍힌 반독재 투쟁… 민주화운동 가치 계승해야)
/김명래기자 problema@kyeongi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