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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2018년 폴란드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열다섯살 스웨덴 소녀 툰베리가 세계 각국의 정치인들을 직격했다. "당신들은 자녀를 사랑한다 말하지만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자녀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어린 선지자의 경고를 어른들은 무시했다. 푸틴은 "어느 누구도 툰베리에게 세상이 얼마나 복잡한지 말해주지 않았나 보다"고 했다. 트럼프는 "밝고 훌륭한 미래를 기원하는 행복한 소녀 같다"고 했다.

소녀 툰베리의 경고는 지금 현실이 됐다. 미국에선 선인장이 말라죽고,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한겨울에 일광욕을 한다. 열돔에 갇힌 지구 곳곳에서 태양의 빛과 열에 사람들이 쓰러진다. 펄펄 끓는 바다는 거대한 태풍을 키워 육지를 물바다로 만든다. 과학자들은 수 십년 동안 기후 재앙을 경고했다. 사라지는 빙하는 분명한 징조였다. 정치인들은 경고와 징조를, 내년이면 정상이 될 이변으로 격하했다. 푸틴은 전쟁 중이고 트럼프는 대권 도전에 나섰다. 모든 비극엔 경고와 징조가 선행한다. 비극을 막을 선지자의 지혜와 자연의 섭리다. 모든 비극은 예정된 비극이라 더 비극적이다.

기후위기 원년급 폭염 속에 대한민국은 비장하다. 한 시대와 세대의 종언을 고하는 만종이 울려퍼진다. 오래된 경고는 유효하고 새로운 징조는 심상치 않다. 


기후위기 경고… 정치인들 무시했으나 현실로
LH 부실시공·대낮 칼부림 등 사회위기 조짐


오래된 경고는 산업화와 민주화 정치세대의 유통기한 만료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두 개의 기적으로 탄생한 나라다. 당대의 숙적 박정희와 김대중이 차례로 기적을 이룬 이적은 세계적 신화다. 박정희는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며 민주주의를 유보하고 한정된 자원을 국부 창출에 집중했다. 김대중은 사형선고에도 굴하지 않고 인동의 뚝심으로 쓰레기통에서 장미를 피워냈다. 박정희의 산업화와 김대중의 민주화의 목적어는 국가와 민족이었다. 그들의 리더십은 오롯이 국가와 민족을 향했다. 김대중이 박정희와 역사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유산을 반분한 정당이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다. 창업 보다 수성이 힘들다. 완성된 산업화와 민주화의 결실은 달디 달아 즐기기에 흡족하다. 오로지 오늘의 권력에만 집중한다. 권력 자체가 목적인 집단은 반국가적, 반민족적 패륜을 불사한다. 적 앞에서 싸우고, 싸우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고, 끊임없이 싸우는 과정에서 모국어를 능멸한다. 불임정당 국민의힘은 체외수정으로 집권했고, 민주당은 민주화 역정이 모호한 대체제로 정체성을 상실했다. 무한 정쟁이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 됐다. 그들의 정치에 국가와 민족은 없다. 수명을 다했고 잔명을 이어 갈 명분이 없다. 국민 절반이 그들을 혐오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동반 퇴장을 요구하는 국민의 묵언 시위가 오늘 당장 광장에서 함성으로 터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국가란 목표 상실하고 '무한정쟁' 뿐인 여야
선거혁명 담아낼 대안 정치세력 출현 갈망


정치가 국가와 민족이라는 목표를 상실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기강이 무너지는 징조가 속출한다. 자칭 국민 공기업 LH의 탐욕과 부실은 공공부문의 붕괴를 보여주는 확실한 징조다. LH와 비슷한 공기업, 지방자치단체, 비영리단체가 널리고 널렸다. 공공의 윤리와 도덕이 무너지니 교사, 학생, 학부모가 교권과 학생인권을 법정에서 다툰다. 공교육의 붕괴는 암울한 미래를 예고한다. 주민등록 없는 영아들이 냉동실에 보관됐고 야산에 묻혔다. 문 앞에 버려진 업둥이 마저 자식으로 거두어 소중하게 길렀던 나라였다. 백주 대낮 칼부림으로 중무장 경찰과 장갑차가 광장을 지키는 세상이 됐다.

삼강(三綱)이 민망할 정도로 정치 권력은 막장이고, 오륜(五倫)이 무색하게 사회와 국가 전체가 혼탁한 기운으로 가득하다. 가짜 개혁과 혁신으로 무마하고 봉합할 수준을 넘었다는 경고와 징조이다. 가짜 개혁은 진짜 혁명을 불러온다. 국민의 선거혁명 의지는 분명하다. 혁명의 물받이가 신통찮을 뿐이다. 총선이 1년이 안 남았다. 국민은 선거 혁명을 담아낼 대안 정치세력의 출현을 갈망한다. 제3세력도 좋고, 국민의힘과 민주당도 갱생하면 가능성이 있다. 혁명을 담아낼 그릇이 없다면 대한민국은 가라앉는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