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등 전국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올해 마련한 무료 법률 지원사업 예산이 거의 바닥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가정폭력·성폭력·스토킹 피해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 법률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법률구조공단,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한국성폭력위기센터,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등 4곳이 사업을 수탁해 운영 중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이중 한국성폭력위기센터에 변호사 선임을 주로 의뢰한다. 재판당 변호사 선임 비용을 최대 15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가족부가 올해 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편성한 예산 약 32억원 중 1~3분기 예산이 지난달 말께 소진됐다. 이 때문에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등이 지원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재판 준비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센터는 지난 7월까지 50여건의 형사 소송을 진행했는데, 여전히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다.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는 디지털 성범죄, 스토킹, 데이트 폭력 등 성폭력 피해자 지원 범위가 넓어지면서 법률 지원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재판당 변호사 선임비 최대 150만원
여가부 편성 32억 중 1~3분기 소진
"수요 많은 쪽에 더 집행 등 대책"
센터 관계자는 "변호사들의 피해 상담이나 고소장 제출, 수사 의견서 작성 등이 피해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상반기에만 수십 명의 피해자가 법률 지원을 받았는데, 하반기는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크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10~11월께 예산이 바닥나면 다음 해까지 어떻게든 버티다 재판을 진행하겠는데, 올해는 너무 빨리 예산이 소진됐다"고 했다.
법률 지원이 어려운 경우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 재판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피해자들이 성폭력 전문 변호사 선임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인천의 한 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상반기 예산이 소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하반기에는 국선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예산이 소진됐다는 소식에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등 다른 기관에도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대한변협법률구조재단 관계자는 "최근 관련 문의가 급증해 당분간 신청 접수를 중단했다"며 "예년보다 성폭력 법률 지원 서비스를 받으려는 피해자가 2~3배는 많아져 예산이 빨리 바닥났다"고 전했다.
여성가족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9일 여성가족부 권익지원과 관계자는 "성폭력 피해 지원 상담소 등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상반기 무료 법률 지원사업 예산 집행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후 수요가 많은 부분에 예산을 더 집행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인천디지털성범죄예방대응센터 자문 변호사인 서성민 변호사는 "여성가족부 예산은 전국 단위로 쓰이다 보니 언제 소진이 될지 모른다"며 "인천시 등 지자체가 성폭력 피해자 법률 지원 예산을 따로 편성하는 등의 방안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