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엄마와 나눈 이야기 떠올라
이른 나이 세상 떠난 새롬이 아줌마
아들에 남편마저 잃은 젬마 아줌마
엄마의 친구들, 그 중에서도 세상을 떠난 세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대화의 중심이 되었다. 첫 번째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 새롬이 아줌마. 호리호리한 몸피와 활기 넘치는 목소리. 이분은 예쁘고 세련된 외모에 위트가 넘치고 취향이 고상했다. 그때만 해도 아파트 화단을 파서 김장독을 묻던 일이 허용된 터라 엄마가 항아리에서 김장김치를 꺼내면 아줌마가 지나가다 한쪽씩 얻어가던 기억이 난다. 엄마 친구지만 내 친구이기도 해서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오 분이나 십 분씩 대화를 나누었다(엄마 친구 중 단독으로 대화가 '통하던' 분이다). 이렇게 빛나던 새롬이 아줌마는 이혼 후에 가난으로 고생하다 이른 나이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아주머니는 두꺼운 겨울옷이 없어 중학생 아들의 남자용 파카를 입고 있었다. 언젠가 엄마는 노래방 테이프에서(그때는 노래방에서 부른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주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새롬이 아줌마의 목소리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고 했다. 아줌마의 평소 인상과 달리 노래 목소리는 비통했다. 이것이 사실인지 엄마의 해석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고인이 된 지 십수 년이 지난 뒤 재생되어 나오는 그 노래를 떠올려보았다. 두 번째는 젬마 아줌마. 엄마와 성당 레지오를 함께 하며 단짝으로 지낸 분이다. 젬마 아줌마의 큰 아들은 나와 동갑이라 같이 성당을 다녔는데, 군대에 가서 수해복구를 하다 어처구니 없는 산사태로 세상을 떠났다. 리비아에서 일하는 남편과 떨어져 아들 셋을 홀로 키우던 젬마 아줌마는 장남에 대한 의지가 컸다. 아들을 보낸 후 남편이 귀국해 부부가 함께 슬픔을 달래며 살았는데, 몇 년 후 아저씨가 건설현장에서 추락사를 당했다.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5년이나 지난 후에야 털어놓았다는 것이다. 가정사의 잇따른 비극에 어떤 동정이나 위로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을 아줌마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젬마 아줌마 또한 몇 년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엄마의 성당 대모님. 치매로 15년 넘는 투병 끝에 작년에 돌아가셨다. 긴 시간동안 자식들이 살뜰히 보살펴서 백발에서 도로 검은 머리가 돋아날 정도였다. 그러나 장례식에서 본 삼남매의 마지막 울부짖음은 "엄마, 미안해요"였다. 작은 호랑이처럼 안차고 다라진 우리 대모님은 성당의 큰일을 도맡아 하신 분이다. 여장부 같던 인생의 마지막이 이렇듯 취약한 상태일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기억속엔 느긋한 중년이미지였는데
상실되는 세계… 기쁨순간 안놓쳐야
정작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이분들의 모습은 이웃과 자신의 삶 속에 느긋하게 자리 잡은 중년의 이미지다. 불운이 덮치기 전까지 흙 속의 조개처럼 편안히 묻혀있을 일상. 인생이 전혀 다른 각도로 비틀리는 것은 책 속이 아니라 책 밖에서 더 흔한 것이 아닐까. 처음부터 끝까지 무탈하기만 한 인생을 사는 사람은 손에 꼽힐 것이다(그 인생이 꼭 좋은 것도 아니다. 고통을 모르는 어린아이로 한 평생 살다 가는 측면이 있으니까). 모든 생은 죽음으로 향하고 그 유한성의 터널에서 우리는 상실되는 세계를 본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인생의 진실은 고뇌와 슬픔이 아닐까. 우리 모두 폭신폭신한 구름 속에서 내려왔지만 눈물씨앗이 곳곳에 숨어있는 한 생을 살아가기 마련이니까. 최근에는 내 지인 가운데도 부모님 상을 치른 사람이 둘이나 있다. 그래서 이 폭염의 한복판에 장례식장에 놓인 국화꽃 향기를 맡았다. 인생의 진실이 슬픔이라면 두 번째 진실은 그 가운데서 기쁨의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립 라킨의 시처럼 '우리보다 오래 남는 것은 사랑'이니 사랑한다는 고백도 아낌없이 하면서.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