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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근 미국에서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등에 대해 '제품을 수리할 권리'가 보호되기 시작하였다. 뉴욕주가 7월1일부터 미국에서 처음으로 소비자의 수리권을 보호하는 법률을 시행하고 있다. 뉴욕주는 주법으로 전자기기 수리 매뉴얼 등의 자료 공개를 제조업체에 의무화했다. 따라서 미국 소비자는 과거보다 손쉽게 수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스마트폰 등이 고장 나면 제조사가 수리를 담당했다. 그런데 제조사가 특정 업체를 지정하는 경우 개인적으로 부품을 구해 수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리비가 많이 들어, 오히려 교체하는 것이 경제적인 경우도 있었다.

제품을 수리할 권리에 대해 미네소타주와 콜로라도주에서도 법안이 통과됐으며, 40개 이상의 주가 관련 법안을 심의하고 있다. 그동안 수리할 권리에 찬성한 Microsoft와 달리 강하게 반발한 것은 Apple이나 Google 등이었다. 주법에 따라 뉴욕에서는 2024년 1월부터는 위반한 메이커에 대해 벌칙을 부과하게 된다. 결국 Apple도 고장난 디바이스의 수리에 필요한 부품이나 공구를 판매하는 수리점을 차린다고 발표했다. 


유럽 화학물질청 공통 지침안 발표
산업단체 '디지털 EU' 정책적 제안


한편 유럽 화학물질청은 지난 3월22일 '제품 수리를 추진하기 위한 공통 규칙에 관한 지침(안)'을 공표했다. 지침안은 소비자가 수리를 희망할 때 필요한 정보나 조건을 알려주도록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수리를 통해 자원의 유효 활용을 도모하며, 폐기물의 삭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침안은 EU 이사회 및 유럽 의회에서 심의 중이다. 지침안은 특정 제품군에 대해서 판매자의 책임 범위 이외에 생산자가 수리해야 하는 의무사항을 도입하고 있다. 가정용 세탁기·세탁 건조기, 가정용 식기세척기, 자동판매기 냉장기기, 냉장고, 전자 디스플레이, 용접장치, 청소기, 서버 및 데이터 스토리지 제품, 휴대전화·무선전화·태블릿 등 9종류의 제품군이 그 대상이다.

EU 지침안에 따르면 소비자는 직접 생산자에게 수리를 의뢰할 수도 있다. 생산자는 유상을 포함하여 수리 의무가 있으며, 제품이 수리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된 경우에만 수리 의무가 면제된다. 생산자가 EU 지역 밖인 경우 역내 권한을 부여받은 대표자가 의무를 이행하도록 하고 있다. 생산자는 수리 의무가 있는 제품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동시에 수리 서비스에 관한 정보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수리에 관한 국내 정보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여 새로운 제품의 구매가 아니라 수리를 선택할 동기를 부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또한 신뢰할 수 있는 수리업체에 대해 품질 기준을 준수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특별한 라벨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지침안에 대해 유럽의 정보통신기술 관련 산업단체인 디지털 유럽이 정책적 제안을 했다. 첫째, 불량품을 정비된 제품과 교환하는 것도 수리 정의에 포함하도록 한다. 현재 소비자들이 수리보다 교체를 선택하는 가장 큰 요인은 수리에 걸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둘째, EU 회원국이 단일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리에 대한 정보를 집약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도록 의무화한다. 현재 지침안에서는 국가마다 여러 플랫폼이 만들어질 수 있어 기업에 등록 부담이 되고 소비자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셋째, 수리 서비스 품질 기준 책정을 위한 명확한 타임프레임을 제시한다. 전자기기의 부적절한 수리가 감전이나 화재를 초래하는 등의 예를 들어 기준 책정에 대해 시간 축을 제시해 안전 확보를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불량품 교환 포함·정보 제공 의무화
서비스 기준책정 타임프레임 제시
지구온난화 인류사회 전체 바꿔야


잘 알다시피 지구온난화 문제는 심각하다. 세계가 안고 있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사회 전체를 바꿔야 할 때라고 한다. 제품을 수리할 권리 역시 지속가능한 사회 실현에 나서야 한다는 세계적 흐름과 함께 확대될 것이다. 향후 제품을 수리할 권리가 미국의 법률과 EU의 지침으로 본격화되면 한국도 그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인지도가 상승할수록 사람들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경제 차원에서는 한국 제품의 미국이나 EU 수출에 대해 새로운 차원의 정책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 소비자 주권의 차원에서도 제품을 수리할 권리에 대한 새로운 활동과 노력이 필요한 때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