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찰스 케인이라는 언론 재벌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지인들의 회상을 통하여 서사화하는데, 서사의 핵심은 기억과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순수한 동심의 세계에 있다.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단어, '시민 케인'하면 자동적으로 연상되는 단어는 바로 '로즈 버드(Rosebud)'다.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들과 회상들을 모자이크처럼 긁어모아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는데, 스토리를 이어가는 영화 속의 작자며 화자는 찰스 포스터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인 '로즈버드'가 무엇인지를 추적하는 기자 제리 톰슨이다.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에게는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려지지 못하며, 관객들에게만 그것이 쓰레기로 태워져 버린 어린 찰스 포스터의 눈썰매임을 슬쩍 보여준다.
그런데 '로즈버드'는 영화 '시민 케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영화에서 '로즈버드'는 눈썰매지만 그것은 고정된 의미를 지니지 못한 채 부유하는 텅 빈 기표와 같은 것으로써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형태와 의미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영화 시민케인 '로즈버드' 주인공 눈썰매
돌아갈 수 없는 '유년시절의 동심' 서사화
재나두(Xanadu)는 영화이면서 추억의 팝 스타 올리비아 뉴튼 존의 노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재나두는 14세기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가 중국의 이상향처럼 묘사하면서 유럽에 전파됐는데, 이곳은 베이징으로부터 약 300㎞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원나라 황제의 별장을 뜻한다. 정확히 말하면 몽골제국의 5번째 칸이면서 원나라 초대 황제가 된 쿠빌라이의 별장으로 한자로는 상도(上都)다. 중국어는 '상두', 몽골어로는 '새너두'라 한다. 수도(首都)인 베이징보다 더 높은 도시가 바로 상도인 것이다. 쿠빌라이가 재나두를 세운 것은 여러모로 불편하고 잠자리마저 불편했던 황궁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늘 함께해온 '게르' 방식이 편했기에 조성한 텐트촌이다. 아무리 많은 돈과 권력을 쥐어도 식성(食性)을 바꿀 수 없듯 우리 각자에게는 '로즈버드'가 있다. 재나두는 바로 쿠빌라이의 '로즈버드'였다.
'로즈버드'는 눈썰매나 게르의 차원을 넘어 글씨나 서예 작품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추사 김정희는 한국서예사를 넘어 세계서예사에 우뚝한 인물이다. '세한도', '불이선란도' 등 수많은 명작이 있지만, 추사가 남긴 최고의 작품은 그가 타계하기 3일 전에 남긴 글씨 '판전'이다. '판전'은 대장경 등을 보관한 봉은사 장경각의 당호(堂號)인데, 마치 유치원생이 쓴 것 같은 절대 순수의 경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과천 추사박물관에 가면 큰아버지 댁의 양자가 된 8세의 어린 추사가 생부(生父)를 그리워하며 아버지에게 쓴 편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편지와 '판전'이 추사글씨의 알파요 오메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판전'은 추사의 '로즈버드'가 투영된 작품인 셈이다.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에겐 '재나두' 상징
힘들땐 각자의 '마음의 고향' 떠올려보자
한 사람이 죽으면 초대형 대하소설과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간난신고와 파란고해 속에서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저마다 매일 같이 드라마를 쓰며 각종 사연과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권력을 움켜쥐고 항하사(恒河沙)만큼의 억만금을 모았다고 한들 갈 때는 다 놓고 빈손으로 간다. 그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은 각자의 '로즈버드'밖에는 없다. 진보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경제적인 것으로 치환시켜버리는 '악마의 맷돌'이라고 했다. 억만금의 부와 명예를 이룬 찰스 케인의 마지막 순간에 남은 것은 '로즈버드'였다. 자본주의 시스템이 조장하는 부질없는 욕망들이 기승을 부리고 삶이 힘겨울 때 각자의 '로즈버드'를 떠올려보자. 순수 자아가 거주하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보자.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