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아동·청소년 분야 연구를 수행하는 경기도 산하 연구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원장마저 베이비박스에 대한 강한 편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부정적인 평가보다 긍정적 평가가 압도적으로 높다. 부정적 인식은 아이들이 지금도 여전히 친부모에 의해 생명을 잃는 현실과 베이비박스가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아이의 생명을 구한다는 중심 가치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인다.
입양특례법은 아동 권리만 초점
8년간 '그림자 아동' 2123명
절반은 베이비박스로 생명 구해
부정적 시각을 지닌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언급하고 싶다. 첫째는, 해당 교회들은 일방적으로 아이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종사자는 베이비박스 벨이 울림과 동시에 아이를 놓고 가는 친모를 찾기 위해 교회 주변을 뛰어다닌다. 만나게 되면, 직접 양육하도록 설득하고, 일정 기간 교회 내에 마련된 거주 공간에 머물게 하면서 육아용품을 지원한다. 주사랑공동체에 의하면 지난 3년간 친모에 대한 상담과 지원을 통해 22%가 원가정에서 아기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둘째는, 베이비박스 운영목적이 아이를 키울 수 없는 딱한 처지에 있는 부모가 아이를 화장실에 유기하거나, 산에서 생매장하거나, 동반 자살하려는 극단 선택에서 아이와 친모 모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함이다. 최근에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2015년 이후 8년간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 이른바 '그림자 아동'이 2천123명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이미 249명이 사망했고 이 중 상당수가 친부모에 의한 방치·유기·살해에 의한 것이며 조사와 수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아동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그림자 아동수의 절반가량이 베이비박스에 놓여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미국의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브라이언 아이비(Brian Ivie)는 한국을 수차례 오가며 2015년 5월 '드롭박스(The Drop Box)'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주사랑공동체 교회(이종락 목사)의 베이비박스를 모티브로 했다. 한국에서도 상영됐지만 역설적으로 한국인보다 미국인에게 더 깊은 감동과 인상을 줬다. 아이비 감독은 영화 제작을 하면서 이 목사의 사랑을 배우고 기독교인이 됐고, 버려진 아이들을 돕기 위해 자선단체도 조직했다. 영화 제작을 후원한 취약 가정 지원 단체인 '포커스 언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의 짐 데일리(Jim Daily) 대표는 미국의 한 방송에서 "이 세상에서 이 목사처럼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고 말했다.
출산율 0.7 '인구재앙' 현실에서
부정적 인식 벗고 순기능 제도화를
입양특례법은 미완의 법률이다. 미혼모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지원제도의 미비를 반영하지 못한 채 아동의 권리에만 초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이 목사는 이 법이 국회에서 의결된 때부터 이 법의 보완책으로 '출산등록제'의 도입을 주장해 왔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도 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들은 입버릇처럼 초저출산 위기를 언급하며 '육아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많은 아이가 희생되는 사태가 발생한 상황을 직시하고 자신들의 역할을 다했는지 스스로 묻기 바란다. 그림자 아동 사건을 계기로 소중한 생명 살리기를 실천하는 베이비박스의 순기능을 제도화할 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출산율 0.7의 '인구재앙' 현실에서 새 생명보다 더 소중한 건 없다.
/이세정 前 경기도 민원실장·대한행정사회 연수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