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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가족은 권력의 자기장에 갇힌다. 최고권력이 의심하지 않는 최측근이라서다. 막후권력에 예민한 정상배들이 꼬이는 이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는 정권의 비선실세로 아버지의 권력을 대행했다 옥고를 치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삼형제도 옥고를 치르거나 구설에 올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작은 형 건평씨 때문에 속이 썩었고, 동생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자 중진 의원이었던 이상득은 '만사형통(萬事兄通)'의 주인공이 됐다.

신기한 건 대통령을 욕보인 자식과 형제는 있어도 부모는 없다는 사실이다. 장삼이사의 부모이든 대통령의 부모이든, 세상에 자식에게 해를 끼치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역대 대통령 부모들이 자식의 영광을 보기 전에 작고하기도 했지만, 생존했어도 자식의 권력이 자식을 해할까 노심초사했을 테다. 김홍조옹은 평생 멸치를 잡아 아들 김영삼의 정치인생을 지원해 대통령직에 올렸지만, 대통령의 아버지라 나서 본 적이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친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15일 별세했다. 재임 중 대통령 부모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친상에 이어 두 번째다. 고인은 대통령 아버지 이전에 대한민국 통계학의 거목으로 우뚝 선 학자로, 학계가 극진한 장례로 모셔야 할 경제석학이다. 대충 쓴 논문으로 딸 수 있던 박사를 걷어찬 석사 석학으로 학계의 존경을 받았다 한다. 아들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자, 아버지는 자신의 업적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자의 부친으로 대중 앞에 소환됐다. 아들이 아버지를 '제1의 멘토'라 하자 여론의 관심이 집중됐고, 말년에 조용히 추억할 부자관계가, 야당 대선후보의 가족 일화로 만천하에 공개됐다. 평생 학자였던 고인에게 대통령 아들은 어떤 의미였을까 궁금하다. "잘 자라줘서 고맙다"는 유언이 의미심장하다. 잘 자라준 아들이 대통령직도 잘 해주길 바라는 염려가 느껴진다.

대통령 부친상에 여야가 험악한 정쟁을 잠시 멈췄다. 대통령은 오늘 발인이 끝나자마자 한·미·일 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한다. 문 전 대통령은 모친상을 치른 뒤 문상에 대한 답례로 여야대표를 초청해 비공개 만찬회동을 했다. 조국 사태가 절정일 때였다. 윤 대통령도 부친상 답례를 겸해 정상회담 결과를 공유할 여야 대표회동을 생각해 봄직하다. 아버지가 아들이 잠시 쉬어 갈 틈을 만들어 준 걸지도 모른다. 국민도 고대하는 장면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