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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명의 허준의 삶은 사극의 단골 소재다. '집념'(1975년), '동의보감'(1991년), '허준'(1999년), '구암 허준'(2013년)은 모두 허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들이다. 그만큼 허준의 삶이 드라마틱했다는 방증이다. 흥미롭게도 허준의 극적인 삶이 그의 사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의 묘를 찾기까지의 과정 또한 한 편의 드라마다.

허준의 묘를 찾아낸 주역은 고문서연구가인 이양재씨다. 그는 1981년 우연한 기회에 허준의 이름이 적힌 고문서(편지) 1점을 사게 된다. 전문가의 자문을 거쳐 문서의 작성자가 허준임을 확신한 그는 허준의 자손들이 해방 전에 모두 황해도 해주군에 살고 있었고, 남쪽에는 자손이 한 명도 없으며, 묘소의 위치도 오리무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때부터 그는 드라마 제목처럼 허준의 묘를 찾는데 '집념'을 불태웠다. 양천 허씨 족보에서 허준 묘소가 '장단하포광암동'(長湍下浦廣岩洞)에 있다는 기록을 찾아낸 후 경기도 옛 장단 땅을 이 잡듯 뒤졌다. 그러나 장단 땅이 DMZ(민통선)에 속한지라 어디가 어디인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해외에서 허준의 후손을 수소문하면 나을까 싶어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후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귀국 후 토지대장을 비롯 자그마한 단서라도 놓치지 않고 추적을 하던 그는 드디어 1991년 9월27일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묘비가 두 동강이 난 채 방치된 허준의 묘와 맞닥뜨렸다. 과거의 명의와 현재의 고문서연구가가 편지 한 장을 통해 운명적으로 만난 지 10년만이었다. 이씨는 회고글에서 "묘소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벼락을 맞은 듯이 강력한 기(氣)가 통하는 충격을 받아 저절로 '여깁니다. 여기가 맞습니다'라고 소리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허준의 묘는 경기도기념물 128호로 지정됐고, 지난 3월 파주시는 '허준 선생 묘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에 착수했다. 또 한 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린 셈이다. 엄밀하게는 에필로그를 남겨두고 있다. 묘 발견 당시, 현장에는 묘비 상단부의 5개 조각으로 깨어진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그 조각들은 한 일반인이 가져가 개인적으로 보관하다 모 시설에 기증한 상태다. 파주지역문화연구소 등이 나서 묘비 조각 환수를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이행되지 않고 있다. 드라마를 완성시킬 마지막 조각이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