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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일본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반인륜적이며 야만적 행태의 극치에 달해 있었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량 학살과 파괴는 물론, 인간을 도구화하고 다른 문화를 철저히 말살하려 했던 점에서 그 반인륜성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 피해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본 자국민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 강점기에서 해방된 날이 광복인 까닭은 이것이 결코 정치적이거나 민족국가적 층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은 말 그대로 인간으로 해방된 날이며 인륜의 빛을 되찾은 날이다. 이 시간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반인륜적 야만이 결코 되풀이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국민을 갈라치기 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듯이 맹목적이고 형식적인 법치를 통해 정치를 왜소화하고 정당한 사회적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가는 것은 이 정권이 들어선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 지난 정권 역시 커다란 책임이 있음도 분명한 사실이다. 정치검찰 출신들이 정권의 전면에 들어서면서 벌어진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의 본질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그 위험은 단순한 정치적 양극화의 문제가 아니라 한 사회를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영역을 적대시하고 없어져야할 것으로 몰아가기 때문이다. 


'공산전체주의 세력' 신조어로 매도
국가 공동체 존재 부정 '자가당착'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당성은 기본적인 시민의 인권과 자유, 인륜의 합리성과 보편성에 근거한 공동체를 지켜가는 데 있으며, 이를 통해 생존의 조건과 상황을 안정되게 유지할 때 가능하게 된다. 그를 위한 책임과 기여는 물론, 그런 미래를 위해 이념적으로 기여하는 지향적 행위는 국가 공동체를 위해 결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다. 지난 78년의 역사에서 민주화 운동과 기본적인 시민의 인권, 자유와 공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는 물론, 이를 위해 필요한 미래이념을 지향하는 모든 노력은 이를 위한 것이다. 경제 민주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다. 이것을 우리 사회가 가장 적대시하는 '공산전체주의 세력'이라는 신조어를 통해 매도한 것은 이 국가 공동체의 존재이유와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가당착이다. 더욱이 그것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나왔다는 것이 이 공동체의 존립과 그 기본 이념인 자유와 민주주의가 얼마나 위기에 처했는지를 너무나 잘 보여준다. 정치적 적대 세력일 수는 있어도 한 사회를 위한 신념에서 이루어진 행위를 '허위 선동'으로 몰아갈 뿐 아니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는' 집단으로 매도한 것은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다만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의도된 발언이라면 더더욱 위험하다.

그동안의 발언이 자기배반적인 분열적 언어였다면 이제는 국가 공동체의 구성 자체를 부정하는 언술에까지 이르렀다. 나치 독일의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가 정치를 적과 친구를 구별하는 일이라고 말했듯이 적대세력을 규정하는 것이 정치적 행동에서 중요할 수는 있다. 그럼에도 한 국가 공동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할 시민 계층을 가장 커다란 적대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가의 정치적 수장으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대한민국 역사 이래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최악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집단 이익 의도된 발언 더 위험
정치학자·언론인 비판 거의 없어
민주주의 지키려는 시민정신 필요


이런 위험한 발언을 비판하거나 그 잘못을 지적하는 정치학자, 언론인을 보기 힘들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지난 정권의 사소한 잘못조차 침소봉대해서 비판하던 주류 언론의 침묵은 이들이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집단이 아니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지난 정권에서 이미 정치적으로 파산했거나 또는 언론장악의 선봉에 선 인사가 부활하는 반민주적 정치에도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오히려 갈채를 보낸다. 진정 집단사익 때문에 국가 공동체를 저버리는 행위가 아니란 말인가. 대부분 시민의 침묵은 이 위험이 너무도 자연스럽고 거침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일까.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목격하는 것은 이러한 파시즘적 야만과 퇴행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일상 가운데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지금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시민정신이 깨어나지 않으면 이러한 야만적 행태가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