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3시 10여 분 길이의 짧은 연극 7편을 한꺼번에 만나는 '제10회 15분 연극제'가 열린 인천 배다리 일대. 마을 놀이터와 동네 문화공간을 돌며 연극이 펼쳐졌다. 번듯한 객석도 그럴듯한 무대도 없었다. 관객들은 아무 곳에나 방석을 깔고 쪼그려 앉아 작품을 감상했고, 배우들도 연기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배우, 스태프 그 어느 누구 하나 불편한 기색 없이 즐겁게 연극에 몰입해 작품을 즐겼다. 이날 어림잡아도 200여 명은 되어 보이는 남녀노소 관객들은 짧지만 강한 충격을 주는 연극의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큐피드의 화살' 등 올해 7편 공연
모든 작품에 수어통역사 해설 지원
지난 2014년 인천에서 처음 선보인 '15분 연극제'가 10회 공연을 마쳤다. 이 연극제는 10여분 남짓한 짧은 연극 7편을 선보이는 연극 축제다. 우리나라에서는 5~15분 길이의 짧은 연극을 생소하게 느낄 이들이 많은데, 미국 등에선 '10분 연극(텐미닛플레이)'이라는 이름으로 활성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에는 이러한 짧은 연극을 즐기는 수천여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연극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모여 즐기는 축제다.
이번 연극제는 오후 3시 창영어린이공원에서 시작해 육교 아래, 철길, 문화공간 '동성한의원' 등으로 이어지며 '문화양조장 스페이스빔'에서 마무리됐다.
모두 7편의 작품이 마을주민 등 관객과 만났다. 공룡들의 배다리 마을에 관한 부탁을 그린 '배다리 공룡들의 요구사항'(극단 작은방·연출 신재훈), 불안한 무명 극작가의 고민을 유쾌하게 그린 '작가를 팝니다'(보트피플·연출 박준하)는, 기독교 신자이면서 간호사 릴리어스 호튼의 1888년 3월 제물포항에 도착 후 독백을 그린 '1888년 3월 어느날에'(극단 해인·연출 이양구), 남녀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잠시 서로에게 이끌린 에피소드를 그린 '큐피드의 화살'(극단 여행자·연출 이대웅) 등이다.
또 한 문화원 직원들이 축제 기획과정에서 겪는 해프닝을 그린 '수평 조직의 이해'(아오이옹심이·연출 신티), 공항 여객터미널에 놓인 수상한 신발로 빚어지는 소동을 다룬 '여러분을 위해 상시 대기 중입니다'(극단 창세·연출 백석현), 백령도를 방문한 노부부가 절벽 위에서 만난 한 위태로운 여인과의 만남을 그린 '절벽 끄트머리'(극단 서울괴담·연출 유영봉) 등의 작품이다. 모든 작품에 출연 배우와 같은 인원의 수어통역사가 함께 출연해 청각 장애인도 축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5분이라는 시간에 불필요한 이야기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밀도 있는 대사와 연기가 연극에 몰입하게 해 연극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밀도 있는 대사·연기… 재미 충분
"주민·연극인이 함께 만드는 축제"
지난 2014년 첫 축제를 기획한 전윤환 앤드시어터 대표는 "이렇게 오래도록 이어질 줄은 몰랐다. 지난 10년 동안 함께한 팀들이 많이 참가했다. 축제를 마을 주민과 동료 연극인 관객이 함께 만들어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감동적이었다"고 말했다.
9년째 15분 연극제를 이끌고 있는 권근영 예술감독은 "한 해 두 해 축제를 이어오며 10년이 됐다. 마을이 변화하는 과정이 축제에 담겨있는 것 같다"며 "마을에 공사가 많은데, 마무리되면 더 넓은 공간에서 더 많은 마을 주민과 축제를 즐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지역에서도 이런 단막극이 열리는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