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시행됐다. 이전까진 해외여행을 하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여권은 한 번의 출국만 가능한 단수여권이었다. 억눌렸던 해외여행 열기가 폭발했다. 냉전 종식과 91년 소련 붕괴 및 동구권 자유화, 92년 한·중수교는 해외여행 붐에 날개를 달았다.
당시 현지 가이드들은 한국인 단체관광객들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베개에 '팁'을 놓아두라고 당부했다. 팁 문화를 몰랐던 한국 관광객들에겐 생소한 경험이었다. 물가가 싼 동남아는 1달러가 공인 팁이었고, 유럽 선진국이라도 5달러면 됐다. 공산품이 귀했던 러시아에선 스타킹이 달러 보다 대접받는다는 소문에 스타킹을 한 묶음 챙겨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기분파 한국인들이 팁을 마구 과하게 뿌려대는 코리안 인플레 때문에 다른 나라 여행객들이 짜증냈다는 일화도 이때의 얘기다.
팁의 정확한 유래는 불확실하지만, 친절한 봉사에 대한 금전 보상 문화는 동서양 없는 인지상정에 가깝다. 다만 미국과 캐나다에선 서비스업 노동자에게 팁을 주는 것이 관습법으로 정착했다. 미국은 아예 팁을 공식 수입으로 인정해, 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형편없는 수준이다. 미국의 영향력 때문에 '팁'을 글로벌 관행처럼 착각하지만, 정작 팁을 강제하는 국가는 거의 없다.
카카오모빌리티가 지난달부터 앱에 택시기사에게 팁을 줄 수 있는 기능을 시범 운영 중이다. 그런데 20일 발표된 소비자 데이터 플랫폼 오픈서베이 여론조사 결과 소비자 71.7%가 팁 도입에 반대했다. 서빙 직원의 친절에 팁을 부탁한 한 카페가 논란이 되자 실시된 온라인 여론조사(더 폴)에서도 61%가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뿌리 깊은 체면문화 때문에 우리 사회의 팁 문화도 낯설지 않다. 카드가 흔치 않던 시절엔 택시기사에게 남은 잔돈을 안받았고, 각종 노동현장에서 정해진 품삯에 막걸리 값이라도 얹어줘야 인정에 맞았다. 고급음식점에서 식사 시중을 드는 '이모'에게 수고비를 미리 찔러주는 장면도 흔해졌다.
국민이 택시기사 팁에 놀란 이유는, 팁이 강제적으로 자리잡을까봐서다. 팁으로 포장된 물가인상도 걱정이지만, 팁 자체가 소비자와 서비스업 종사자 모두에게 차별과 역차별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팁 캠페인의 의도와 저의를 의심하는 까닭이다. 인지상정에 맡기는 것이 우리 문화에 맞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