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을 앞당긴 천재 물리학자인가, 대량 살상 무기 개발의 서막을 연 죽음의 사신인가. 조국을 배신한 공산당원인가, 누명을 쓴 학자인가. 크리스토퍼 놀런(1970~) 감독의 열두 번째 영화 '오펜하이머' 개봉을 계기로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덩달아 영화의 원작으로 알려진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도 주목받고 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란 별칭을 지닌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1945년 세계 최초로 핵폭탄을 개발했다. 그는 부유한 독일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하버드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쳐 독일 괴팅겐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교수들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바람에 결국 그는 괴팅겐 대학으로 학적을 옮기고 이곳에서 양자물리학을 공부하여 192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다 앞길이 막힌 동생을 보면서 정치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1936년 캘리포니아 공산당 활동에 잠깐 참여했는데, 그의 아내 캐서린 퓨닝 해리슨은 공산당원으로 학생 운동에 가담한 실천가였다.
그는 1942년 이른바 '맨해튼 계획'이라는 원자탄 개발을 총괄하여 마침내 원자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폭 투하 이후 심한 자책감에 시달리다 1945년 10월 연구소 소장에서 사임했으나 1946년 대통령 직속 기구인 '원자력 자문위원회'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1953년 11월 오펜하이머가 소련의 스파이라고 고발하는 편지가 FBI에 접수됐고, 이를 계기로 청문회가 열렸다.
놀런의 영화는 크게 네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기억 삼부작으로 분류되는 '인셉션', '메멘토', '인썸니아', 둘째는 우주를 다룬 '인터스텔라', 셋째는 물리학을 소재로 한 '테넷', '오펜하이머', 넷째는 '다크 나이트'를 포함한 배트맨 시리즈다. '오펜하이머'는 물리학 소재의 영화로 핵개발과 청문회라는 두 사건을 중심으로 그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한 인물을 다룬 영화를 통해서 요즘 같은 고도의 기술사회에서는 새삼 과학과 정치와 도덕이 별개의 영역이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