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 조각보가 펼쳐져 있고 조각보 위로는 무표정한 사람의 얼굴과 꽃, 나무의 모습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114명의 인물이 각기 다른 표정을 한 채 숲에서 어울리고 있다.
인천 선광미술관에서 서양화가 박진화의 개인전 '관계의 열두 방향'이 열리고 있다. 박진화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다룬 30여 작품을 선보인다. '인간', '비인간', '관계', '인류세', '네트워크' 등의 단어가 주요 키워드다.
작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을 사물에도 시선을 쉽게 거두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햇빛에 반짝이는 돌멩이, 녹아 사라질 눈사람, 바람의 간지럼, 물거품 속 부서진 조개더미, 말라비틀어진 배고픈 물감, 색 묻고 때 묻은 작업복, 힘 빠지고 마모된 아픈 붓, 늙어가는 의자, 과속방지턱, 비 오는 날 물구덩이, 쭈그러진 종이컵 따위 등이다.
인천 선광미술관, 박진화 개인전
관심 두지 않는 사물에 감정이입
인류세 지속성 탐구… 27일까지
작가의 이러한 버릇은 '오래도록 남아 순환하는 물질과의 협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가의 삶의 태도에서 기인한다. '산다는 것'을 끊임없는 관계의 연속이라고 정의하는 작가는 인간이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과 사물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인간과 자연, 사물 등 비인간이 수평적 관계로 관계를 맺는 모습을 표현하는 작품을 이번에 선보이고 있다. 전시 작품 가운데 여러 조각의 헝겊을 덧대 만든 조각보나 퀼트의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결과물이 많다.
작가는 "낡은 조각 천을 하나하나 이어 붙여 바느질해 만드는 조각보처럼 인간과 사물, 동식물, 물질을 해체하고 캔버스 위에 다시 재배치하는 과정으로 생명의 숨구멍을 만들며 관계의 망을 만들어 나간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관계 맺음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류세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도 이번 전시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다.
박진화 작가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삶의 태도를 성찰하는 과정"이라며 "인간과 비인간의 소통 가능성을 제시하고, 더 나아가 연약한 것들의 존중으로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는 세상을 만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이번 전시는 27일까지 이어진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