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언제 자기 자신의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게 되는가? 자살은 우발적으로도 일어나지만 대부분 실제로 시행이 되기까지는 몇 개의 단계를 거치게 된다. 우선,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생각이 깊어지면 계획이 구체화되고 실제 시도까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자살하려는 사람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만 있어도 자살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의 대다수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일종의 자살 시그널, 신호를 보낸다. 죽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거나 삶을 마감하겠다는 문자를 남기는 등의 행동을 하고, 인터넷으로 관련된 검색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SNS를 통하여 동반 자살을 할 사람을 모집하고, 일면식도 없는 사람끼리 만나 실행에 옮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자살예방법에 따라서 자살을 부추기거나 자살행위를 돕는 정보를 유포하는 경우 처벌을 받지만 이에 반해서 자살을 미화하거나 모방을 유도하는 사진이나 정보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점도 우려스럽다. 자살에 대한 충동이 높고 실제 실행할 확률이 높은 10~20대들에게 이러한 정보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SNS 상에서 '#ㄷㅂㅈㅅ' 이런 식으로 동반자살을 알리고 구인을 하는 일들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가족의 동반자살'은 부모가
자녀 '살해'후 극단선택으로 봐야
자녀들 결코 동의했다고 볼 수 없어
그런데 이러한 행동이 얼마나 모순된 것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이 세상의 삶이 고통스럽고 싫어서 생의 마감을 선택하는 그 순간에도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야말로 인간이 본성적으로 갖고 있는 삶에 대한 애착을 반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충동의 순간을 포착하고 적절히 개입이 이루어진다면 이들은 언제든 다시 삶으로 복귀할 수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살이 사회적으로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가족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얼마 전에도 한 아버지가 신세를 비관하여 아내와 자녀를 모두 죽이는 사건이 있었고, 승용차에 가족을 모두 태우고 바다로 들어가 열 살 된 자녀가 함께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안타까운 사연에 붙는 단어가 여전히 '가족의 동반자살'이라는 것이다. 특히 일가족이 사망하는 경우 부모 중 한 명이 미성년 자녀의 목숨을 먼저 끊고 자신도 삶을 마감하는 형태를 갖게 되는 데 이것은 앞서 언급한 '동반자살'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다. 다시 말해서, 자녀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선택권 없이 목숨을 빼앗기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부모가 살아남게 되었을 경우 동반자살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도 이러한 끔찍한 사건이 발생 시 자녀가 미성년자가 아닐 경우 자녀 스스로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었다. 분명히 밝히지만 부모의 선택으로 인해 일가족이 사망한 것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후에 부모 스스로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하다. 사고를 당한 자녀들은 그 어떤 식으로든 결코 '동반자살'에 동의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 유지·존중 가치 해하는 것은
인류의 '가장 처참한 행위'
초저출생 국가를 걱정하고, 비혼주의자가 늘어나고 있음을 탓하는 저 밑바닥에는 20여 년간 자살률 1위 국가라는 오명이 깔려 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생명 유지와 존중은 그 어떠한 가치보다도 훼손돼서는 안되는 상위의 개념이며 이를 해하는 것은 인류가 행할 수 있는 가장 처참한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는 것이 버겁고 때로는 내 인생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네가 버린 오늘은 그 누군가가 그렇게 소중히 여겼던 내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정명규 이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