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나는 건 아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던 동작들이다. 선생님이 "무지개~"라고 나직하게 말하면 아이들은 즉시 책상을 반원형으로 새로 늘어놓고 앉았다. "여섯명~"하면 다시 착착 움직여 여섯 명씩 그룹을 지어 마주 앉고, "전체~"하면 스무 명이 칠판을 바라보는 평범한 대형으로 돌아갔다. 선생님의 손끝이나 몸짓, 입모양까지 집중해서 바라보다가 아주 작은 힌트만으로도 기다렸다는 듯 번개같이 지시를 수행하는 아이들은 첨단 동작인식 AI를 탑재한 고성능 기기 같아 보였다. 선생님의 손짓만으로 요술같이 움직이던 아이들 속에는 발달지체아동도 있었는데, 그 아이의 얼굴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환한 미소와 열정이 일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그만 아이들을 황홀하게 지켜보며 뿌듯한 하루를 보냈다.
그것은 툭하면 폐교 위기가 닥쳐오는 작고 오래된 학교에서, 평범한 수업참관일에 보았던 풍경이었다. 그 요술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 사람은 퇴직을 몇년 앞둔, 덩치가 자그마한 담임선생님이었다. 그분은 교감이나 교장처럼 높은 자리에 오르지 않고 평교사로 정년퇴임 하셨는데, 그분을 담임선생님으로 오래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누렸던 작은 축복이었다.
초교 저학년 딸 수업 참관 황홀·뿌듯한 추억
작가 돼 방방곡곡 학교 강연 축복같은 시간
물론, 내가 학생으로 지냈을 때나 학부모가 되어 다시 학교에 돌아갔을 때나, 학교에서 늘 좋은 일만 겪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12년의 학창시절을 요약해보자면 축복 같은 선생님을 한두 분, 그냥 평범한 선생님을 열 명쯤 만났고, 악몽 같은 선생님을 한두 번쯤 겪었다. 결론적으로 그냥 평범한 정규분포 곡선이었는데, 일상의 대화에서는 악몽 같은 선생님 이야기가 화제에 훨씬 더 많이 올랐다. 행복과 감사는 고통과 분노에 비하면 훨씬 잔잔한 감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찾아가는 학교들은 유명하거나 특별한 학교들이 아니다. 아파트 단지에, 오래된 마을에, 혹은 전교생이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여러 가지 형태의 평범한 학교들이다. 그곳에는 평범한 아이들과 평범한 선생님들이 있다. 나를 한번 초대하려면 선생님들은 여러 장의 기안서와 행정서류를 작성하고,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고, 토론이나 연극 같은 연계 활동을 시키고, 감상문과 보고서를 받아야 한다.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시켜줄 생각 하나로 선생님들은 돈도 되지 않고 일만 많은 행사를 자청해서 벌인다. 모든 선생님들이 다 축복 같은 존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장 평범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열정으로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교육청 앞 근조화환 검은옷 입은 교사 시위
학교, 더좋은 직장돼야 좋은 선생님 남는다
무더위가 기승이던 8월, 오래 전 내가 폐교 반대 시위를 하러 갔던 교육청 앞에는 난데 없는 근조 화환이 무더기로 섰다. 거리에는 검은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뙤약볕 속에 주말마다 시위를 했다. 시위대에 익숙한 광화문 주민이지만 낯선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겪은 선생님들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검은 옷의 시위대 속에는 축복 같은, 평범한, 악몽 같은 선생님들이 정규분포의 비율로 섞여 있었을 것이다. 집단 속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섞여 있는 것은 자연의 순리다. 선생님은 생활인으로서 누구나 일찍 퇴근하고 싶었고 궂은일은 피하고 싶었고 하는 일에 비해서 급여가 박하다는 한탄을 했을 것이다. 우리와 똑같다.
학교는 지금보다 더 좋은 직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 곁에 좋은 선생님들이 남는다.
/심윤경 소설가
지금 첫번째 댓글을 작성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