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 수장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면서 바그너란 이름이 또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바그너그룹'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음악가 '바그너'가 왜 용병 조직의 이름이 됐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바그너를 특히 좋아하는 클래식애호가를 '바그네리안'이라고 부르는데, 바그너그룹 공동창업자인 드미트리 웃킨이 바로 바그네리안이다. 그의 호출부호마저 '바그너'일 정도였다. 그가 조직 이름을 짓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리 심오할 것 없는 작명 배경이다.
문제는 웃킨이 히틀러를 숭배하는 '네오나치'라는 점이다. 히틀러 또한 바그너의 '광팬'으로, '발퀴레의 비행' 등 바그너 음악을 선전 선동의 도구로 쓰곤 했다. 바그너가 반 유대주의적 성향의 소유자이긴 했지만 자신의 음악이 이런 식으로 악용되는 것은 결코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유대인들에게 바그너 음악은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음악이다. 바그너 음악이 금기시 된 이스라엘에서 그의 음악이 한 대목 연주된 적이 있는데 국회에서 지휘자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등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처럼 음악가가 이데올로기에 휘둘린 사례는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천재 작곡가 윤이상(1917~1995)이다. 1967년 7월 중앙정보부가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적화공작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는데 연루자 명단에 윤이상이 포함됐다. 이른바 동백림 사건으로,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최대 규모의 간첩조작사건이었다. '정치와 음악'의 저자 김은경씨는 "박정희는 동백림사건을 이용해 3선 개헌을 통한 장기집권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던 1967년 6·8선거에 대한 학생과 야당의 규탄운동을 침묵시킴으로써 장기집권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했다.
최근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조성키로 하면서 때 아닌 이념 논쟁이 불붙고 있다. 광주에서 태어난 정율성은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출신이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팔로군 행진곡과 조선인민군 행진곡이 북한군과 중국군이 한국전쟁 당시 부른 군가라는 점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군사정권의 표적이었던 윤이상의 사례와는 분명 결이 다르다. 귀추가 주목된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