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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호 인천시 반도체바이오과장
아주 오래전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배를 한 척 건조하기로 약속했다. 각자 배를 활용할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고, 관청에서 격려도 하던 차여서 선급금을 받아 용골과 프레임도 그럴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약속했던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 공사가 더는 진척되지 못한 채로 배는 뼈대만 드러낸 채 덩그러니 놓여 있다. 사람들은 여러 차례 모여서 어떻게든 배를 만들 방안을 궁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사가 어그러진 게 누구 탓인지 다투기도 했다.

지난 15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천로봇랜드 상황을 비유하자면 저런 그림이 아닐까 싶다. 인천로봇랜드와 같이 시작했던 마산로봇랜드는 이미 완공돼 손님을 맞고 있는데, 인천은 여전히 빈 땅에 잡풀 관리만 하고 있다. 로봇랜드라는 이름만 들으면 인상이 찌푸려지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다. 완성될 것 같지 않은데 그렇다고 뼈대를 해체하자니 비용이 더 많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

 

인천의 '로봇랜드사업 정상화'
바람 놓치지 않는 과정·수단
서로 실리 양보 '배' 만들수 있어


질문을 바꿔봐야 했다. '배를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왜 배를 만드는가'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배는 항해가 목적이다. 항해는 탐험이든 무역이든 목적이 있다. 인천시는 배를 타고 어디를 가서 누구와 무역을 할지 계획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가 선단을 꾸린다는데 어떻게 선두에 설지, 혹은 한자리라도 끼어 차지할지를 궁리해야 한다. 인천시는 이제 막 산업으로 태동하는 '로봇' 분야의 선두 지자체가 되기 위해서 이 배를 가지고 무엇을 할지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다.

15년이 지나는 사이 로봇랜드를 둘러싼 환경은 많이 바뀌었다. 애초 그림이 미래기술을 슬쩍 엿볼 수 있는 테마파크였다면, 지금은 그런 계획이 순진하다 싶었을 만큼 어마어마한 속도로 로봇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전 세계 규모라고 해봐야 삼성전자 연간 매출액에도 못 미치던 로봇산업의 규모가 지금은 2023년 350억달러, 2030년까지 1천600억달러 규모로 예상될 만큼 커졌다. 반도체 등과 함께 현 정부의 6대 중심 산업이자 인공지능(AI)과 결합해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첨단산업의 하드웨어로 주목받고 있다. 제조나 물류자동화를 넘어 문제 해결을 위한 '서비스로서의 로봇(RaaS·Robot as a Service)' 수요도 폭증할 것이다.

아직까지 '로봇'하면 많은 사람들이 육중한 메카닉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로봇이 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로봇 디바이스(장치)를 넘어 이용자들의 니즈(요구)를 해결하는 서비스 관점의 접근이 필수적이다.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AI), 서비스 기획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인력 육성과 산업 생태계 구축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 대응하여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첨단로봇 산업전략 1.0'을 마련하겠다고 공표한 바 있다. 현대자동차가 로보틱스랩스를 두면서 일찌감치 이 대열에 합류했고, 삼성전자와 한화 같은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서둘러 닻을 올리고 있다. 바야흐로 차풍사선(借風使船, 바람의 힘을 빌려 배를 부림)의 시대이다.

단순한 개발사업을 넘어
대한민국 로봇산업 육성 첫 단추


로봇랜드 사업의 정상화는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이 바람을 놓치지 않기 위한 과정이고 수단이다. 바람을 놓치면 배를 완성해도 띄울 수가 없기에, 당사자들도 서로 약간씩 명분을 챙기고 조금씩 실리를 양보하면서 다시 배를 만들 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제 겨우 건조 작업을 재개한 수준이다. 앞으로 배를 완성하고 물에 띄워 출항을 하기까지 지속적으로 협의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인천시가 하반기에 발표할 '로봇산업 육성계획'과 궤를 같이하면서 로봇랜드는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메이저 기업과 첨단기술을 가진 강소기업들이 상생하는 로봇산업의 중심 클러스터가 될 것이다. 합의에 참여한 모든 당사자들이 이 중심을 만드는데 기여한 플레이어들로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로봇랜드 사업의 정상화는 단순한 개발사업을 넘어 대한민국 로봇산업 육성의 첫 단추로서 의미를 갖고 있다.

/윤재호 인천시 반도체바이오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