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교사의 죽음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논쟁이 10년만에 다시 불붙었다. 아이들을 사랑했던 교사가 아이들을 위해 손수 꾸미고 가꾸었던 교실 안 작은 공간에서 생을 마감한 사건. 우리의 교육현장이 이 지경에 이르자, 그 원인을 두고 당장 학생인권조례가 지목된 것이다.


경기도는 대한민국 학생인권조례의 시초가 된 곳이다. 그 출발에는 어떠한 이야기가 있었을까. 그리고 조례가 정착되는 과정에 작금의 교육현장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을까. 10년을 거슬러 올라가, 경인일보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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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79년 6월 수원의 한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비오는날 풍경이다. 학생들의 밝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인권보호 vs 탁상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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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10년 8월 16일자 22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2010년 8월 16일자 22면 (지면보기 클릭)

 

2010년 8월 16일자 경인일보 기사에는 ‘내년 초중고 체벌금지. 인권보호 vs 탁상행정’가 실렸다. 요지는 학생 인권보호를 위해 경기도교육청이 2011년부터 도내 모든 학교에 학생체벌을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일선 학교에선 ‘학교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 아니냐’는 비판여론이 일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를 도입한 당시 김상곤 교육감은 “군에서도 언어, 신체폭력이 사라지고 있는데 학교에서 교육이란 명분으로 체벌을 용인해선 안된다”며 “학생인권조례안을 도의회에 제출할 예정이고 내년부터 시행되도록 준비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그 취지를 밝혔다. 도교육청은 체벌금지의 대체프로그램으로 ‘독후감, 봉사활동, 과제물 부과’ 등의 지덕벌 제도와 그린마일리지, 이른바 상벌점제 도입을 고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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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스승의 날을 맞아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꽃을 전달하고 있다. 스승의 은혜에 감사하는 학생들 밝은 모습이 표정에 드러난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이전인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학생인권조례가 경기도를 강타했다. 학생인권조례의 초안에는 ‘모든 체벌과 집단괴롭힘 금지/과도한 휴대전화 규제금지/머리카락 길이 제한을 포함한 두발 및 복장 개성실현/수업시간외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대체과목 없이 특정 종교과목 수강 강요금지 등 종교의 자유/빈곤학생 등에 대한 교육복지권/학생자치활동 및 학칙 제개정 등 현안참여권/징계방어권’이 포함됐다.

 

이런 내용이 알려지자 일부학생들 중엔 조례가 이미 시행된 것으로 착각해 교사들의 생활지도에 반발했다는 기사도 실렸다. 2009년 12월 22일자 경인일보 기사 ‘두발, 복장 단속하자 “선생님 고발할 수도 있어요” 홍역 치르는 학생인권조례 초안’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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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09년 12월 22일자 19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수원의 한 고등학교에선 매주 월요일마다 실시하는 학생 두발 및 복장점검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이 인권조례를 이유로 교사 단속을 거부했다는 것. 한 학생이 거부하자 다른 학생들도 잇따라 반발하며 일부 교실에선 아예 진행을 포기했다는 분위기도 전했다. 어떤 학생들은 “어차피 조례가 공포되면 복장도 두발도 모두 자율인데, 왜 그러냐”고 항의했다.


학생 생활지도를 해야 하는 교사들의 반발도 컸다. 조례 제정 취지에는 대체로 공감하지만,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례가 시행될 경우 학교의 기능까지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강했다. 아울러 “교권보호 장치 등의 대안이 함께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생님 고발

우여곡절 끝에 2010년 10월 5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시행됐다. 2010년 10월 29일 경인일보 기사 ‘학생인권조례 시행 후 꼬리무는 체벌신고’ 기사에는 시행 후 학교 현장의 혼란이 고스란히 실렸다.


‘최근 몽둥이 체벌과 신입생 서약서로 물의를 빚은 수원 A고 이외에도 사립B고에서도 집단적으로 체벌이 가해졌다는 민원이 접수돼 도교육청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도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체벌, 복장, 자율학습 등과 관련해 인권이나 자율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는 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 여고 학부모는 교감이 복장이 불량한 딸 친구에게 과도한 체벌을 해 턱뼈를 다쳤다고 딸의 진술을 토대로 작성한 글을 올렸다. 해당 교감은 “타이와 단추를 풀고 머리도 묶지 않은 한 여학생을 교무실로 데려와 훈계하면서 가볍게 뺨을 한번 꼬집은 적은 있지만 그 이상의 체벌은 없었다”고 해명했다....인터넷 제보는 충격적인 내용이 많지만, 상당수가 지역과 교명이 익명 처리돼 교육당국이 사실확인과 후속대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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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10년 12월 23일자 22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2010년 12월 23일 22면 (지면보기 클릭)

 

2010년 12월 23일자 경인일보 기사 ‘학생조례 공포 후 생활지도 어려움’에는 공식석상에서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나온 모습이 그려졌다.


‘학교 관계자들은 “학생인권조례 공포 이후 조례제정 목적을 잘못 이해한 일부 학생들 때문에 학생지도에 어려움이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한 교장은 “학생조례 제정 후 두발 자율화나 휴대전화 소지와 관련해 학생들이 이를 지도하는 교사들에게 반발하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원들은 인권조례와 관련된 지속적인 학생교육, 대안교육, 특별교육기관 확충 및 다양한 지도 프로그램 제공 등의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도교육청은 “인권조례 의미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인권교육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며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만든 학교 생활인권규정을 학생들이 책임감을 갖고 준수하는 자율 책임교육이 진행돼야 한다”고 응대했다. 하지만 교육청 관계자의 말 어디에도 올바른 인권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생활인권규정에 대한 책임교육을 책임져야 할 ‘주체’는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결국 학교가 책임을 져야하고, 학교는 교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로 10년을 버텨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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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4일. 경기도학생인권조례 1주년을 맞아 교사 평화공동체 교육 실천 선언 기자회견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간섭이 사라진 학교, 잔소리 하지 않는 선생님
“학교와 선생님 간섭이 사라져서 좋아요”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3년 후, 경인일보가 기획시리즈를 통해 만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2013년 10월 11일자 경인일보에 실린 ‘학생인권조례 시행 3년 그후’ 시리즈에서 이 학생은 “학생인권조례가 뭔지 몰라도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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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2013년 10월 11일자 23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2013년 10월 11일 23면 (지면보기 클릭)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기사에는 ‘초등학교 교사인 채지현(가명)씨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구체적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그는 “행정적 절차를 통해 하달된 사항과 언론을 통해 전달된 내용 외에는 자세히 파악을 못하고 있다”며 “조례와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하면 되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고 기록됐다.


기사는 여론조사 결과도 첨부했는데,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생활인권규정을 잘 알고 있냐는 질문에 ‘보통이다’라는 학생이 42.4%, 잘 모른다는 학생이 18.2%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조례의 주요 조항들이 가지는 본래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후속 작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례가 통과된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을 2011년 5월 13일자 경인일보에는 ‘교사 80% 직업 만족도 떨어졌다, 학생에 대한 권위 상실 3년째 급락’ 기사가 실렸다.


스승의날을 맞아 교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것인데, ‘최근 1~2년간 선생님 자신이나 동료교사들의 교직 만족도 및 사기가 어떻게 변화했느냐’는 질문에 79.5%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전년인 2010년과 비교해도 16.1%p, 2009년보다는 24.1%p나 늘어났다고 기사는 밝혔다. 그 원인으로 교사의 학생에 대한 권위상실이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간섭이 사라진 학교, 잔소리를 하지 않는 선생님. 학생인권조례 시행 3년 후를 이렇게 결론내렸는데, 10년 후인 지금은 간섭하고 잔소리하면 선생님이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시대가 됐다.


과연 학생인권조례는 시행되지 말았어야 할 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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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0년대 초등학교 예절교육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좋은 법을 만들어놓고도 교육현장에 제대로 녹여 낼 고민도 하지 않은 채, 학교, 교사, 학생에게만 그 책임을 방기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숱한 경고음이 지난 10년 간 울렸다. “알아서 하세요” 한마디로 팔짱끼고, 뒷짐 지고 있던 이들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