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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작가
폭탄이 어디에 떨어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가 될 수 있다면 한국 사회는 정말 재밌는 곳이다. 지난 7월 충청 오송에서는 폭우에 대비한 안전 시스템을 챙기지 않은 권력자들 덕분에 막고도 남을 대량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작년 가을 서울 중심가에서는 인파 안전사고를 허투루 여긴 권력자들 덕분에 기록적인 참사가 벌어졌다.

이런 사고가 국지적으로 투하된 대량살상 무기에 의한 것이라면 날마다 수류탄이 터지기도 한다. 지난해 한국에서는 하루 평균 6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 또 최근에는 젊은 남성에 의한 길거리 살인·강간 사건이 잇따르며 일상 깊숙이 폭탄의 파편이 튀고 있고, 안정된 일자리로 여겨지던 초중고 교사들의 자살 및 갑질 피해 사건들은 갈수록 안전지대가 사라지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당장 사람이 죽고 다치는 것은 아니지만 잼버리 사태나 일본의 오염수 방류도 우리 사회 전반에 폭격이 가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세계적 오명으로 남을 잼버리 사태는 그럭저럭 선진적이라 믿었던 행정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었고,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정부 여당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행으로 점철돼있다. 

 

다양한 형태의 폭탄과 총알들이 끊임없이 쏟아질 것이지만 국가나 사회, 공동체를 통해서는 딱히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은 '각자도생'을 한층 더 다짐하는 중이다.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의 조사를 보면 최근 온라인에서는 '무정부 상태'와 '각자도생'의 언급량이 폭증했다. 애당초 각자도생에 치우친 삶을 살고 있지만 그걸로도 부족한 위기라고 느끼는 것이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위기와 대처방식 양갈래


안정되고 안전한 삶을 마다할 사람은 없다. 원하는 것은 모두 같으니 관건은 방법인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최악의 길과 최선에 가까운 차선의 길을 대비시켜 보여준다. 우선 최악은 각자도생끼리 힘을 합쳐 '각자도생 연대'를 결성하는 것이다. 각자도생끼리 뭉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역설로 숱한 문제를 야기한다. 영화 속에선 대지진으로 모든 게 초토화된 상황에서 그나마 건재한 아파트의 주민들이 각자도생 무리를 이룬 채 집을 잃은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살인도 불사하며 힘을 모아 먹거리를 약탈하던 이들의 결말은 결국 각자도생에 의한 파멸이다.

영화 속 가장 안전한 길은 누구도 밀어내지 않는 것이다. 먹을 것과 잘 곳을 나누고 싸움을 멀리한다. 모두가 이방인인 가운데 낯선 이를 배척하지 않으며 배척당하지도 않는다. 각자도생 연대가 '기여한 만큼 배급받는다'는 자본+능력주의 철칙을 세운 반면, 상부상조의 확대 집단은 '여건만큼 기여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원칙을 느슨하게 실천한다.

전자의 방식은 물리력으로 타인을 짓밟으며 먹을 것을 구하고 잘 곳을 지켜낸다. 이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구분되고 이윽고 남성은 음식을 구하러 밖에 나가지 않는 여성을 얕잡아보며 권위를 내세운다. 후자의 방식은 성별 역할에 구분이 없고 서로 간에 위계가 생기지도 않는다. 영화는 위기 속에서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제에 기반한 능력주의가 그 자체의 결함으로 인해 파국으로 치달음을 생생히 묘사한다. 아파트 부녀회장의 파국을 별도로 조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그녀는 음식이 부족해질 때 남성인 주민대표를 질책하는가 하면 '내 새끼 중심주의'에 찌들어 있다.

한국 물론 전세계 다르지 않아
능력·자본주의 제대로 작동하려면
성별·인종 이유 우수자원 외면 안돼

영화가 그린 위기와 그 대처 방식의 양 갈래는 한국은 물론 전 세계로 확장해도 별반 다르지 않다. 번영의 기본 조건은 능력주의를 온전히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성별, 인종, 성적 지향 등 직무 능력과 무관한 요인은 무시하고 우수한 인적 자원을 능력에 근거해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능력주의 혹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성별 역할을 최대한 구분하지 않아야 하고 성적 지향이나 인종 등을 이유로 더 우수한 자원을 외면하는 일도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노동시간이 짧아야 하고 육아 및 가사에서 성평등도 실현돼야 하며, 비장애·이성애 남성이 아니더라도 직무에 지장 없는 여건을 총체적으로 갖춰야 한다. 전부 한국이 잘못하는 일들이다. 하기사 비장애·이성애 남성이라도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가 만만찮은 곳이 바로 한국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