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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수 노무사
올여름, 평범한 일상이 위협받았다. 신림동, 서현역을 필두로 산불처럼 번진 흉기 난동 범죄 탓이다. 불안에 떠는 시민들을 비웃듯 비슷한 범죄를 저지르겠다는 온라인상 예고도 바퀴벌레처럼 들끓었다.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인천에서, 어린이대공원에서 흉기로 시민들을 위협한 범죄자들이 체포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미증유의 사태 한가운데서도 언론, 정부, 수사기관은 범죄의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는 데 필사적으로 게으르다. 그들은 이번 사건 유형을 너무나도 때 지난 '묻지마 범죄'라고 명명하거나, 그러한 명칭이 부적합하다는 지적을 받으면 '이상동기 범죄', '외톨이 범죄' 등 무늬만 다른 비슷한 의미의 단어로 바꿔서 사용할 뿐이다.

반드시 물어야 함에도 묻지 않는 것은 따로 있다. 범죄자의 성별이다. 성별은 이번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의 특징 중 가장 두드러지는 지표다. 신림역 사건 이후로 시민들을 흉기로 위협하여 검거된 범죄자는, 보도에 따르면 전원 남성이다. 이에 대해 흉악범죄자는 생물학적 특성(폭력적인 본능, 또는 근육과 체격이 그 요소라고들 한다) 때문에 남성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 이어질 것이다. 


왜 불특정 대상 범죄 거의 남성인가
아직 답 모른채 사회에 필요한 질문


살인예고는 어떠한가? 살인예고는 체격이나 폭력성 표출 없이도 인터넷에 접속할 수만 있다면 순간의 어리석은 충동이나 호기심으로도 저지를 수 있는 범죄다. 그런데도 온라인 살인예고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들은 압도적으로 대다수가 남성이다. 지난 18일 기준 검찰 집계에 따르면 온라인상에 살인예고 게시물을 올려 구속된 피의자 20명 중 남성이 19명, 95%를 차지했다. 오히려 국내에서 살인, 강도, 방화 등 흉악범죄를 실행한 범죄자의 평균적인 남성 비중인 80%대(2021년 검찰청 통계)를 훨씬 웃도는 수치다.

성별이라는 지표를 무시한 '이상동기 범죄', '외톨이 범죄'라는 표현은 이번 사건을 적확히 표현하는 단어인가? '이상동기 범죄'는 범죄자를 아주 특이한 욕구와 동기를 가진 사람으로 단순화·타자화하여 사회적 차원의 원인분석 및 대응책을 멀리하게 만든다. '외톨이 범죄'는 주로 종교적·정치적 동기로 집단 테러 범죄가 잦은 서구 사회에서 개인이 저지르는 범죄를 표현했던 '외로운 늑대형 범죄'를 수입한 단어로, 한국 사회의 범죄 유형을 일컫기엔 적절하지 않다. 또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에서 따왔다 해도 그러한 특징이 범죄의 동기를 설명해줄 수도 없다.

당연히 남자가 범죄를 더 저지른다는 말은 어쩌면 고의적인, 비겁한 눈 가리기다. 현시대의 어떤 남성들이 모종의 분노와 열등감, 혐오로 말미암아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해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실재하는 '현상'이다. 전염병 유행 또는 높은 실업률이 오로지 남성만 외톨이로 만들지는 않는다. 인터넷 활성화로 인한 인간다운 소통 부재, 글로벌 경쟁 심화는 남성들에게만 적용되는 고통인가? 그렇지 않은데도 왜 불특정 시민을 위협하는 범죄를 저질렀거나 저지르고 싶어 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남성인가. 아직 우리는 답을 모른다. 그래서 당장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질문이다.

살인예고 범죄자 연령대 공개하며
'갈등 유발' 이유 성별 통계 안밝혀
침묵 계속땐 어떤 세상 보게 될까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부득불 설명한다. 모든 남자가 범죄를 저지른다는 '성급한 일반화'를 하려는 게 아니다. 어떤 결함을 이유로 일부 남성들(그리고 극히 일부의 소수 여성들)이 분노, 혐오에 기인한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록 민감한 주제라고 하더라도 언론, 정부, 수사기관 등 책임 있는 자들이 성별에 대한 분석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건 자체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살인예고 게시물로 검거된 범죄자들의 구체적인 성별 데이터는 공개되지 않았다. 경찰은 온라인상에 살인예고 게시물을 올려 검거한 피의자가 28일 기준 235명이며 이 중 10대는 97명(41.3%)이라는 연령 데이터까지도 소상히 공개하지만 성별 통계는 밝히지 않는다.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라는 황당한 이유다. 언론도 집요하게 묻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아직도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침묵과 거짓말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세상을 목격하게 될까.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