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제국 군악대는 음악회도 열었다. 대한제국 국가가 백탑 주변에 울려 퍼졌다. 오가는 사람들이 탑골공원 안 '백탑(白塔)'에 모였다. 백탑은 원각사지십층석탑을 말한다. 백탑은 어디에서나 보이는 심지어 한강에서도 볼 수 있었다. 백탑은 누가 만들었을까. 원각사는 도성 안 가장 큰 사찰이었다. 원각사지십층석탑이 탑골공원을 지키고 있다. 유교의 나라에 큰 사찰이 있었다. 대원각사비도 옆에 있다. 대원각사비를 가까이 보면 두 마리의 용이 날 듯 큰 거북이 미소를 지으며, 꼬리를 살포시 감춘다. 거북이 발가락과 발톱까지 세밀하게 그렸다.

600여 년 전 종각 옆에 원각사가 세워졌다. 유교 나라에 불교인 원각사와 대원각사비가 서 있다. 백탑은 600여 년 동안 역사와 문화의 중심에 있었다. 세조는 고려 남경에 있던 흥복사를 증축하여 새로운 절로 만들었다. 효령대군 제안으로 회암사 석가모니 사리를 가져와 사리탑도 쌓았다. 도성 안 가장 높은 하얀 탑은 백탑이라 불렸다. 백탑을 보면 사자·용·모란·연꽃·부처·보살상·천인상 등 수많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보면 볼수록 기이하다. 왕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였다.
역사·문화 중심 '원각사지십층석탑'
원각사 허물며 만남의 장소 탈바꿈
연암 박지원, 탑 주변서 모임 결성
젊은이들과 토론하며 북학파 시작
'가장 작은것, 가장 본질' 핵심 철학
백탑이 있는 곳에 해탈문을 세우니 사동 또는 탑골로 불렸다. 연산군 때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기방으로 만들고, 원각사 건물은 없앴다. 백탑만 남으니 만남의 장소로 되었다. 정조시대 백탑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암 박지원은 가회방 재동으로 이사 온 후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학문을 논하고,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소통하였다. 250여 년 전 인왕산과 백악산 기슭에 거주한 서인 중 노론이었다. 창덕궁과 경희궁 사이 정치권력이 모였던 공간이었다. 그 당시 사회는 성리학에 북벌론을 주장하는 사회였다.
원각사 허물며 만남의 장소 탈바꿈
연암 박지원, 탑 주변서 모임 결성
젊은이들과 토론하며 북학파 시작
'가장 작은것, 가장 본질' 핵심 철학
백탑이 있는 곳에 해탈문을 세우니 사동 또는 탑골로 불렸다. 연산군 때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기방으로 만들고, 원각사 건물은 없앴다. 백탑만 남으니 만남의 장소로 되었다. 정조시대 백탑 주변에 젊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연암 박지원은 가회방 재동으로 이사 온 후 젊은 사람들을 만났다. 학문을 논하고,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소통하였다. 250여 년 전 인왕산과 백악산 기슭에 거주한 서인 중 노론이었다. 창덕궁과 경희궁 사이 정치권력이 모였던 공간이었다. 그 당시 사회는 성리학에 북벌론을 주장하는 사회였다.

연암 박지원은 젊은이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다. 밤새 토론하고, 백탑을 돌고 청계천 수표교까지 걸었다. 청의 선진문물을 진지하게 토론하며,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논했다. 박제가·홍대용·이덕무·유득공·서상수 등 젊은 청춘들과 함께 백탑 주변에서 새로운 모임을 만든다. 병자호란 후 북벌론에 맞서며, 오랑캐라 할지라도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면 북학을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모이는 공간, 학술 토론을 벌이는 소통의 장이 백탑 주변에 있어 그들을 '백탑파'라 불렸다. 청의 발달된 사상과 학문을 배워야 살 수 있다는 북학파(北學派)의 시작이다.
연암 박지원이 북경과 열하를 다녀와 쓴 '열하일기(熱河日記)' 필사본이 장안의 화제였다. 도성 안과 밖에서 열하일기 재미에 모두 다 빠졌다. 열하일기를 한 번 읽기 시작하면 헤어 나올 수 없었다. 그 당시 베스트셀러가 열하일기였다. 압록강 건너 북경과 만리장성 넘어 몽골이 가까운 열하까지 죽음을 걸고 다녀온 여행기다. 죽음을 눈앞에 둔 여행 기록서인 열하일기는 정조도 감탄했다. 하지만 정조는 인정할 수 없었다. 정조는 문체반정으로 연암 박지원의 북학파를 꺾으려 했다.

연암 박지원은 열하를 다녀온 후 안의 현감으로 청의 선진문물을 적용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큰 의미를 되새겼다. 옛것을 존중하며 새로운 것을 창조하며 면천 군수와 양양 부사로, 북학파 영수로서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 백탑파의 영향으로 북학파는 개화사상으로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는 백탑파 철학을 찾아 백탑을 걷는다.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 아래 거북이가 미소 지으며 이 가을에 당신을 기다린다.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