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傳) 묘지사지
인천 강화군 마니산 동쪽 초피봉 기슭에 위치한 고려 강도(江都·고려 전시수도) 시기 묘지사지(妙智寺址). 같은 시기 'ㄷ'자 형태의 전면 온돌 구조와 다락집 형태가 발굴된 건 강화 묘지사지가 처음이다. 강화 묘지사지는 역사·학술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비지정문화재로 관리 주체가 없는 탓에 방치될 상황에 놓였다. 2023.9.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최근 문화재청 발굴 조사에서 확인된 인천 강화도 고려 강도(江都·고려 전시수도) 시기 묘지사(妙智寺) 대형 온돌 건물터가 다시 땅속에 파묻힐 처지가 됐다. 고려 후기 전면 온돌방 및 다락집 구조로 확인돼 학술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관리·보존 주체가 없는 탓에 복토(覆土)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실정이다.

지난달 30일 오후 3시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마을. 마을 초입 이건창(李建昌·1852~1898) 생가를 지나 초피봉 기슭의 펜션 뒤 산길에 들어섰다. 10분 정도 걸어 평탄화된 터에 올랐다. 돌이 크고 작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었다. 배경지식 없이 본다고 해도 오래전 집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이곳은 고려 원종(재위 1260∼1274)이 마니산 참성단에서 제사를 지내기 전 머물던 묘지사가 있던 자리다. 역사서 '고려사(高麗史)'에만 존재한 묘지사가 문화재청의 발굴 조사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방전체 대규모 온돌시설 형태 온전
다락집 구조 사례 확인도 '최초'
"관광지 될 수 있을텐데 아쉬워"

 

전(傳) 묘지사지
인천 강화군 마니산 동쪽 초피봉 기슭에 위치한 고려 강도(江都·고려 전시수도) 시기 묘지사지(妙智寺址). 같은 시기 'ㄷ'자 형태의 전면 온돌 구조와 다락집 형태가 발굴된 건 강화 묘지사지가 처음이다. 강화 묘지사지는 역사·학술 가치가 크다는 평가를 받지만, 비지정문화재로 관리 주체가 없는 탓에 방치될 상황에 놓였다. 2023.9.3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문화재청 소속 학예연구사와 함께 둘러본 묘지사 터는 고려 강도 시기 생활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상부층(상단 평탄지)과 하부층(하단 평탄지)으로 나뉘어 있는 이곳에 계단으로 추정되는 통로와 방바닥으로 활용된 구들장, 기왓장 등이 발견됐다. 사람이 직접 땅을 파거나 돌을 캔 흔적도 남아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전면 온돌방 구조였다. 불을 땐 공간(아궁이)으로 추정되는 곳에서부터 구들장 밑으로 화기가 흐른 'ㄷ'자 형태의 통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굴뚝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넓은 공간을 분리해 방별로 온돌을 설치한 흔적도 남아있었다. 이처럼 방을 분리해 전면 온돌시설을 설치한 형태는 고려 강도 시기 유적 중 확인된 바 없다.

문옥현 학예연구사는 "이렇게 방 전체에 온돌시설을 설치한 건 고려 말 정도 시기였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여말선초(고려 말~조선 초) 온돌방으로 익히 알려진 구조와도 전혀 다르다"며 "방 전체에 대규모 온돌 시설을 설치한 흔적이 온전하게 남아있는 건 묘지사 터가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묘지사 터에는 온돌방 외에도 바닥으로부터 높게 떠 있는 누마루(다락) 흔적이 남아있다. 같은 시기 유적 중 다락집 구조 사례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려시대 건물 구조를 새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가 발견된 것이다.

문화재청은 지난달 30~31일 시민을 대상으로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설명회를 끝으로 묘지사 터를 원래 흙으로 다시 덮을 예정이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사유지의 유적을 관리하고 보존할 주체가 없다. 훼손을 최소화하려면 다시 흙으로 덮는 방법밖에 없다.

이날 현장 설명회에 참여한 강화군 길상면 마을활동가 신희자(53)씨는 "전국에서 이렇게 온전한 형태로 발굴된 사례가 드문 만큼 이곳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면 관광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이대로 덮인다고 하니 너무 아쉽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3면(강화 비지정문화재 430여점… 광낼 줄 모르고 방치하는 지자체)

/유진주기자 yoopearl@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