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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광기'로 인한 비극은 동서양을 막론한다. 중세 유럽에서 자행된 마녀사냥과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만행 등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을 넘어 지금까지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고찰을 숙제로 남겨두고 있다.

집단 광기로 인해 벌어진 비극 중 대표적인 사례가 '간토대지진 학살'이 아닐까 싶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일본 간토 지방에서 일어난 규모 7.9의 대지진을 말한다. 이 지진으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이 집을 잃었다. 특히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퍼지면서 약 6천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했다.

간토대지진 발생 100주년을 맞는 1일 간토대지진 직후 벌어진 무차별한 학살을 소재로 삼은 영화 '후쿠다무라 사건'이 일본에서 개봉한다고 한다. 1923년 9월 6일 일본 지바현 후쿠다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영화의 줄기다. 간토대지진이 터지고 5일 뒤, 이 마을에 일본인 보따리상 15명이 왔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조선인이라고 착각하고는 유아와 임신부를 포함해 9명을 살해했다. 보따리상들은 자신들은 일본인이라며 기미가요까지 불렀는데 시코쿠 사투리를 듣고는 그들을 조선인으로 오인해 살해했다. 영화는 이처럼 간토대지진 당시의 집단 광기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에 대해 일본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이나 사과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일본인 감독이 간토대지진 학살사건을 소재로 영화를 만든 것에 대해서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감독은 "개인일 때는 선량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서는 얼마나 잔혹했는지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분명 일본 관객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소재일 터이다. 간토대지진 대학살의 최대 피해자인 조선인이 조연급에 머물렀다는 점에서 아쉬움은 남지만 간토대지진을 통해 집단 광기의 실체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국내 개봉을 기다려 본다.

집단 광기는 후쿠다 마을의 사례처럼 과거사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오히려 가짜뉴스를 비롯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현대 사회가 집단 광기에 더 취약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집단 광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단지성을 키우는 것이다.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집단 지성의 필요성을 되새겨본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