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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아이 학교 보호자 단체 채팅방에 분주하게 글이 오르내렸다. 아이 학교 인근 지하철역에서 무차별적인 범죄가 일어났다는 소식이었다. 익숙한 거리에서 일어난 잔혹한 범죄 소식은 나의 일상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그 시간,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아 나를 비껴갔을 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가 내 생활 반경 안에 성큼 발을 내디뎠다. 묻지마 범죄, 이상 동기 범죄, 무차별 범죄 등, 언론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는 기사가 이어졌다. 타인을 해하려는 마음에 '작동' 스위치를 누른 것처럼 범죄를 예고하는 글이 온라인에 넘쳐났다. 봉인되어왔던 분노의 마음이 타인과 사회를 향해 쏟아지고 있는 듯했다. 두려움과 공포가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익숙한 공간, 평온한 일상으로 들어온 잔혹한 범죄에서 모두의 안전은 안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안전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완벽하게 안전한 상태는 만들어지기 어렵다. 일상을 둘러싼 통제할 수 없는, 우연히 일어나는 위험과 위기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위험이 닥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사고가 일어나도 인명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 더 나아가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범죄가 일어나는 사회적 구조를 살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재발방지대책은 현재 닥친 상황만을 모면하기 위한 임시방편일 뿐이다.


이상동기 범죄 근본 예방책은
고립속 범행 결심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


정부는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일어났던 이상동기범죄 해결책으로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가석방을 허용하지 않는 무기형 추진, 사법입원제 도입 검토 등 강력하고 엄정한 사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저위험 권총보급, 의무경찰제도 부활 등 경찰력 강화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방안이 과연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처벌중심, 치안 강화는 범죄가 일어난 후의 대응일 뿐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왜 범죄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살피고 대안을 제시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과정이 삭제되었기 때문이다.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범죄를 결심하게 만드는, 타인에 대한 폭력을 용인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에 대한 평가와 성찰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문제들은 내재해 있었다. 무한경쟁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은 늘 경쟁의 상대로 인식되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주위를 돌아보는 일은 갈수록 소원해져 갔다. 약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이 만연해졌다. 내가 처해있는 현실과 실패는 그저 노력하지 않은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었다. 사회는 갈수록 극단으로 치닫고, 사회 속에서 고립된 사람들의 분노는 타인을 향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번지고 있는 이상동기범죄는 특정 개인의 일탈이 아닌, 무한경쟁 사회가 만들어낸 모두의 삶과 연결이 단절된 결과가 아닐까.

서로 연결되는 삶 감각회복 필요
누군가 배제 안되게 주위 살펴야


이상동기범죄의 가장 근본적인 예방책은, 누군가 고립 속에서 범죄를 결심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범죄의 예방은 모두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이 사회에서 서로 연결되어 살고 있다는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행동은 나의 일상에도 영향을 미친다. 누군가의 안전하지 않은 오늘은 나의 안전과도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이 연결 속에서 누군가 배제되지 않도록 주위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누구도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고, 탈락하지 않고, 함께 동행하는 것. 그래도 조금은 살만한 사회로 복원하는 것. 그것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은정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