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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
한국인에게 노벨문학상은 매우 특별한 느낌을 준다. 서구 백인 중심이라는 미학적 준거에 대한 꾸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이 파생시키는 도서시장이나 문학장에서의 효과를 경험적으로 귀납해보건대, 그 위상은 여전히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벨문학상의 의미나 영향력을 일부러 폄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노벨상은 우리 독자들에게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각별한 표지(標識)이자 권력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1895년에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제정된 노벨상은 평화상이 정치적 시의성을 가장 크게 띠고 있고, 과학이나 의학이나 경제학 분야는 비교적 중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문학상은 그 중간쯤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한림원에서는 'Literature'를 문학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라틴어 'Litera'(문자)에서 파생된 단어로 보아, '쓰다'라는 행위 일반 차원으로 수상 작가를 확장해가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노벨문학상은 역사나 철학, 노랫말이나 논픽션 장르 등에도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왔다고 할 수 있다.


노벨문학상 파생효과 여전히 막강
한강 '맨부커상 수상' 가능성 최고조


한국에서도 스웨덴 한림원의 요청으로 작가들을 추천한 바 있다. 1982년 김동리의 '을화' 이래로 서정주, 황순원, 최인훈, 박경리, 고은, 김지하, 황석영, 이문열, 이승우 등의 작가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연전에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이래 현재 한국문학의 노벨상 잠재력과 가능성은 최고조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화하려 할 때 우리는 좋은 작가의 발굴, 번역 인력의 양성, 양질의 번역 활성화를 통한 다른 언어권과의 교류를 충실하게 설계하고 실천해가야 한다. 그 자연스러운 성과로서 한국 작가가 가까운 미래에 노벨상의 쾌거를 이루어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당당히 나아가기 위해 설립된 정부 기관이다. '1996년 문학의 해'에 문학인들의 소망을 담아 창립된 '한국문학번역금고'를 모태로 하여 그동안 한국문학의 해외소개와 문학교류에 전력을 기울여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문학은 번역과 해외출판, 세계문학과의 교류, 차세대 번역가 양성 등을 통해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고, 세계인으로부터 인류의 문화자산을 풍요롭게 할 'K-문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사용해온 '세계화'라는 표현은 해외에서 한국문학을 알아달라고 애원하던 시대의 수동적 술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금은 세계문학 시장의 수평적 일원으로서의 위상과 가능성을 집약하여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으로 지칭해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으로서 한국문학이 당면한 역할을 수행해 가야 한다고 할 때, 한국문학의 생산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양질의 번역 결과를 통해 세계 독자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만나는 것은 더없이 불가피하고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곽효환 원장 역시 한류문화와 문화콘텐츠 차원에서 한국어 콘텐츠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면서 그 핵심 역할을 수행할 번역가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발굴해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작가 발굴·번역 인력 양성 등 통해
세계 독자들과 다양한 소통 과제로
수준 낮은 AI보다 창의적 번역 필요


물론 최근 인공지능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해 번역이 문제적 영역으로 떠오른 바 있다. 번역기의 활용은 영화, 드라마, 소설 등에 종사하는 번역가들에게 이제 전혀 낯선 것이 아니다. 번역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도입은 상용 단계에 와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역과 문체 면에서 인공지능의 번역 수준은 그 퀄리티가 현저하게 낮다. 따라서 여전히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번역은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번역은 원전에 대한 반역이 아니고 우수한 번역 자체가 원전 못지않은 권위를 띠어가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완강한 상용 흐름과는 별도로 가장 '문학적'인 양질의 번역을 통한 K-문학의 미래를 우리는 열어가야 한다. 한국문학번역원이 그동안의 성과를 밑거름 삼아 '세계문학으로서의 한국문학'으로서의 성과를 더욱 크게 일구어가기를 희원해본다.

/유성호 문학평론가·한양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