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범도 장군의 항일운동 업적을 뒤로하고 흉상까지 치운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4일 오후 1시께 인천 연수구 '함박마을'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국적 고려인 차이고르(46)씨는 이렇게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사범대를 졸업한 고려인 3세 차씨는 6년 전 한국으로 왔다.
그는 고려인이 모여 사는 함박마을에 정착한 이후 '원 고려인 문화원'을 운영하며 이웃 고려인들에게 한국어와 역사·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문화원 출입문에는 홍범도 장군의 사진과 함께 '항일독립전쟁의 살아있는 전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최근 국방부가 2018년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중 홍범도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겠다고 밝혔다. 1927년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이력을 문제 삼은 것이다.
현재 육사 충무관 건물 앞에는 홍범도·김좌진·지청천·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의 흉상이 설치돼 있다.
국방부 홍범도 장군상 문제 삼아
함박마을 고려인들 '안타까움'
자부심 상징 인물 논란에 속앓이
차씨는 "홍범도 장군은 대한독립군을 이끌고 봉오동 전투에서 무장투쟁을 하며 우리 민족과 조국을 위해 싸운 독립 영웅이면서, 황무지로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의 아픈 역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당시 독립운동을 하면서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지만, 그 문제로 홍범도 장군의 업적을 뒤로하고 흉상까지 치운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홍범도 장군은 1937년 스탈린 정권의 한인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고, 1943년 75세로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홍 장군 유해는 2021년 광복절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고려인은 일제강점기에 농업이민, 항일독립운동 등을 위해 구소련 지역으로 이주한 이들을 일컫는다.
익명을 원한 카자흐스탄 국적 한 고려인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남한으로 어렵게 모셔왔을 때 국내에 있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 사이에선 자부심을 느끼며 환대했다"면서 "홍범도 장군을 이런 식으로 대우할 거면 왜 카자흐스탄에서 어렵게 유해를 모셔온 것이냐는 이야기도 나온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려인단체 '사단법인 고려인 너머' 관계자는 "고려인들의 자부심을 상징하는 인물에 대한 논란이 생겨 고려인들이 가슴 아파하고 있다"며 "흉상 이전 문제가 정치적 이념 싸움으로 번졌다. 고려인들 입장에선 의견을 내고 싶어도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까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