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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동독은 여행자유화 정책 기자회견을 갖는다. 예정된 발표 내용은 '10일부터 비자 발급 개시'였다. 국경개방 시점을 묻는 이탈리아 ANSA 통신 기자 리카르도 에르만의 질문에, 동독 대변인 귄터 샤보프스키는 "지체 없이, 즉시.(Sofort, unverzuglich.)"라 답한다. 에르만은 "베를린 장벽 붕괴"를 타전했다. 오답(誤答)에 오보(誤報)였다. 오보에 운집한 동서독 시민들이 9일 밤 베를린 장벽을 허물었다. 오보가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역사를 만들었다. 독일 정부는 2008년 그에게 훈장을 수여했다.

에르만의 행운은 예외적 사례이다. 1986년 국내 한 신문은 '김일성 사망' 호외를 뿌렸다. 이틀 뒤 김일성이 평양비행장에 등장하면서 세계적 특종은 초대형 오보로 전락했다. 1946년 시카고 트리뷴은 토마스 듀이의 대선 승리를 보도했다. 예측 보도였다. 당선자는 해리 트루먼이었다. 트루먼은 오보가 실린 시카고 트리뷴을 들고 활짝 웃는 사진을 남겼다. 오보는 기자에게 치욕이고 언론사에겐 악몽이다.

교육과 윤리로 전승된 기자들의 취재 관행의 목적은 오보 방지다. 오보는 사회와 개인에게 불가역적 피해를 발생시킨다. 지루한 팩트 체크 과정을 거쳐 주장을 사실로 객관화하고, 당사자의 반론까지 실어야 한 꼭지 기사가 지면과 방송에 나간다.

최악은 기사 조작이다. 특정한 목적을 위해 날조된 기사는 윤리 차원을 넘어 범죄이다. 날조의 목적에 따라 죄의 경중은 땅에서 하늘 사이일 테다.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조작 의혹이 정국을 강타 중이다. 의심받는 조작의 핵심 내용은 부산지검 검사 윤석열이 부산저축은행 피의자 조우형에게 커피를 타주며 사건을 무마했다는 것이다. 김만배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에게 인터뷰 형식으로 전달했다. 2021년 9월 인터뷰가 '뉴스타파'에 전달돼 대선 3일 전 공개됐다. 윤석열이 대장동 몸통이라는 이재명의 주장을 증거하는 보도로 대선 막판을 달구었다. 정치적 공방은 생략하고 언론만 보자. 신학림도, 뉴스타파도, 뉴스타파 보도를 인용 보도한 언론도 당사자 조우형을 취재 과정에서 패싱했다. 취재의 상식을 완전히 이탈했다. 신학림은 저서 3권 값으로 김만배에게 1억6천500만원을 받았다. 자기 생각에 '정가'라 우긴다. 오보에도 고개 떨구는 기자들에게, 너무 치욕적인 장면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