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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영화 '벤허'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전차경주가 아닐까. 주인공이 모는 네 마리의 하얀 아라비아말은 자체로 강인함과 아름다움의 교집합이다. 경주는 아라비아말의 승리로 끝났다. 그럴 것이 영국이 자랑하는 경주마 '서러브레드'도 17세기에 토종 암말과 아라비아산 수말을 교배해 만든 품종이다. 비록 훌륭한 경주마 종자라도 길들이지 못하면 한낱 마차용이다. 따라서 훈련이 중요한데, 여기에서 '당근과 채찍'이란 관용어가 생겨났다. 당근은 상이고 채찍은 벌이다. 말을 다루듯이 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용어여서 그다지 긍정적인 용례는 못된다. 한자성어로는 신상필벌(信賞必罰)이겠다. 현대 조직에서 활용하는 대표적인 인사관리 기법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한다. 미국 샌디에이고 시월드의 인기 쇼 중 하나가 '범고래와의 만남'이다. 이 킬러 본능의 범고래도 조련사의 칭찬에 멋진 묘기를 보인다는 거다. 물론 칭찬 뒤에 당근 대신 물고기가 주어지겠지만. 이들 범고래에게 칭찬 아닌 꾸중은 금물이다. 실제로 학대당한 '틸리쿰'이란 범고래는 14년을 함께 지낸 조련사를 2010년 물어 숨지게 했다. 채찍 대신 동료들과 집단 굶기기로 벌을 줬는데 이에 화가 났다는 것이다. '블랙피시'라는 악명까지 얻은 이 범고래는 21마리의 새끼를 낳고 2017년 죽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했던가. 일본 중견기업 미라이공업은 '유토피아 경영'으로 유명하다. 전기용품 사업이 주력인데 기존의 통념을 벗어난 경영방침을 내세운다. 예컨대 엄격한 채용심사도 상명하복 분위기도 없다. 무능하다고 잘릴 걱정도 없다. 비정규직도 없고 최고의 복지에 정년을 보장한다. 초대 사장인 야마다 아키오는 "사람을 다룰 때는 당근과 채찍 두 가지 전략이 있다. 그런데 어떠한 경영학 책도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사용하라고 나와 있지 않다. 우리는 당근만 쓴다"고 소개했다. "전기요금을 낭비하면서 치사하게 정리해고하기 보다 전기요금을 치사하게 아끼면서 정리해고를 안 하는 게 낫다"는 거다.


아부로 윗사람 꽁꽁 묶는 '비겸술'
그렇게 권력을 장악한 상앙·이사
자신이 내세웠던 법에 의해 죽고
'지록위마' 조고 모함에 목숨 잃어
비겸 못 살피면 훗날 심판 못 피해

여하튼 '당근과 채찍'이 말이나 아랫사람을 부리는 기법이라면, 반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꽁꽁 묶는 수법도 있다. 바로 '비겸(飛箝) 처세술'이다. 비(飛)는 띄우고 칭찬한다는 뜻이다. 겸(箝)은 쇠사슬로 묶고 집게로 잡는다는 뜻이다. 즉, 윗사람을 달콤한 말로 추켜세우고는 꼼짝 못하게 붙들어 매는 술책이다. 

 

비겸술은 전국시대 기인 귀곡자가 가르쳤다. 그의 제자로는 합종연횡의 소진과 장의,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빈과 방연이 있다. 법가(法家)의 상앙과 이사도 제자인데 이들의 공통된 장기는 '윗사람에 대한 칭찬'이다. 아부 말이다. 귀곡자는 말한다. 비겸을 쓸 때는 상대의 지능과 재능, 기세를 파악한 후 그의 측근이 돼라. 계속 추켜세우고 칭찬하면 마음이 풀어져 본심을 드러내면서 결국 자신을 옭아맬 말을 하게 된다. 이로써 상대를 꼼짝 못하게 묶을 수 있다. 바로 '내가 빈 것을 보내도 실질적인 것이 돌아오는' 비겸술의 요체이다.

상앙이 진나라 효공을 만나 처음엔 요순의 제도(帝道)와 성탕의 왕도(王道)를 설파한다. 그런데 효공은 태평성대와 인의(仁義)의 정치에 관심이 없다. 상앙은 곧바로 눈치를 채고 힘과 권모술수의 패도(覇道)로 노선을 바꾼다. 구미가 당긴 효공은 그를 중용한다. 그렇게 재상에 오른 상앙은 법을 수단으로 권력을 장악한다. 이른바 '상앙변법'이다. 법을 앞세워 왕자까지 처벌하며 위세를 부렸으나 그의 종말은 사기열전이 전한다. 자신이 내세웠던 법에 의해 거열형을 받고 죽는다. 이사 역시 진시황을 설득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에 오른다. 중국 통일의 일등공신으로 분서갱유를 주도하며 비위를 맞추지만 '지록위마(指鹿爲馬)' 조고의 모함에 걸려 죽는다.

여기저기서 '녹취록'이 터져 나온다. 공통점은 칭찬(아부)과 쇠사슬이다. 바로 '비겸'의 적나라한 모습이 아닌가. 낯 뜨거운 아부에 가려진 쇠사슬에는 엄청난 책값과 시정잡배 수준의 교양이 매달려 있다. 비겸을 살피지 못하고 줄 서거나 줄 세운 자의 말로는 역사가 말한다. 배신에 치욕을 겪거나 훗날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나중에 후회한들 소용없다고.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