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처가 이른바 '노란 버스'로 불리는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된 차량만 학교 체험학습 이동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놓은 이후, 학교 현장은 물론 전세버스 업계도 대혼란에 빠져있다. 교육부가 재해석을 요청하는 등 진화에 나섰지만,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일선 학교들이 체험학습을 취소하고 나서면서 전세버스 업계의 손실도 커지는 상황이다.
노란 버스는 학생 통학을 위해 쓰이는 차량으로, 제도에 따라 어린이 안전에 특화해 구조를 개조한 차량이다. 차 전체를 노란색으로 도색해야 하고 어린이 체형에 맞게 조절할 수 있는 안전띠와 정차 여부를 알리는 황색·적색 표시등을 설치해야 한다. 일반 버스를 이런 노란 버스로 바꾸려면 구조개조에만 500만~600만원이 들어가는 것은 물론, 성인 승객을 태울 수 없다.
주중에 상시 통학하는 데는 이같은 노란 버스가 쓰여야 하지만, 수학여행이나 체험학습처럼 비정기적으로 이뤄지는 활동엔 노란 버스를 이용하지 않아도 됐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에선 수학여행 등 현장 체험학습에 일반 전세버스를 임차해 써왔다.
그런데 법제처가 수학여행 등 체험학습으로 이동하는 것 역시 '어린이 통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상황이 달라졌다. 체험학습 이동에도 어린이 통학에 준하는 차량 규정을 적용해야 하자, 수학여행 등을 앞둔 교육 현장은 물론 전세버스 업계도 혼란에 빠졌다. 교육부·경찰청이 단속을 유예하고 법제처에 재해석을 요청하는 등 진화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크게 동요하고 있다.
학교들 소송 부담에 취소 움직임
전세버스 "비용 문제" 개조 불가
지역 전세버스 업계는 다른 탑승 수요를 배제하면서까지 체험학습 수요를 고려해 기존 버스를 개조하는 건 어렵다는 반응이다.
경기지역 전세버스 업계 관계자는 "개조하는 데만 적어도 500만~600만원은 들어가는 데다 일반 성인은 태울 수가 없다. 개조한 후엔 어린이 통학이나 체험학습 목적으로만 쓸 수 있는데, 1년에 2~3번 체험학습 나가려고 누가 개조에 선뜻 나설 수 있겠나"라고 토로했다.
경기도어린이학생통학운송사업협회 관계자도 "우리 협회에 소속된 차량들은 어린이·학생 통학만 25년 넘게 전문적으로 해와서 이미 모두 그에 맞게 구조 개조가 돼있는 차들이지만, 그 외 시장 전반엔 여러 구조적인 문제상 적법하게 변경된 차량이 많지는 않다. 일반 차량을 운행하는 입장에선 갑자기 구조를 변경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일 것"이라며 "당분간 교육 현장과 전세버스 업계에 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일선 학교에서 하나둘 체험학습을 포기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예약 취소에 따른 피해도 발생하고 있다는 게 전세버스 업계 주장이다. 경기도전세버스운송조합 등 각 시·도 조합이 취소 피해를 집계하고 있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900건 이상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이 지난 7~8일 전국 유치원·초등학교 교원 1만2천15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10명중 3명꼴로 체험학습을 취소했다고 답했다.
교육 현장에서의 각종 민원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가운데, 단속을 유예한다고 해도 불법 논란이 있는 버스를 이용하는 데 대한 부담이 있어서다.
교육부·경찰청, 단속 유예 진화
김교흥 의원, 법개정안 대표발의
자신을 경기도민이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아이가 초등학생인데 코로나19 때문에 내내 체험학습을 못가다가 처음으로 가기로 해서 많이 들떠있었다. 그런데 버스 문제 때문에 취소한다는 알림이 왔다"고 밝혔다. 다른 누리꾼도 "지금 저희 아이 학교뿐 아니라 줄취소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도교육청 측은 "체험학습을 취소한 학교도 있고, 취소를 검토 중인 학교도 있는데 구체적인 현황을 파악하진 않았다"면서 "체험학습을 기존 방식대로 진행해도 괜찮다고 일선 학교에 공문을 보내긴 했지만 각 학교에선 민사상의 소송 등 부담을 고려해 취소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혼란이 지속되자 국회에선 법 개정 작업에 나섰다. 김교흥(민·인천서갑) 의원은 기존처럼 체험학습에 일반 전세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에 대해 김 의원은 "비상시적 현장 체험학습에 이용되는 자동차를 어린이 통학버스에 포함토록 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워 학사 일정에 큰 혼란을 초래하고 전세버스 업권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현장 지적이 있다"고 법 제안 이유를 설명했다.
/강기정·조수현기자 kangg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