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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영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
나날이 각박해지고 파편화되어 가는 현실이다. 사적 안전망은 작동을 멈춘 지 오래고, 사회적 안전망 또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버거운 이들, 이웃도 없고 국가의 보살핌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서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

앉아서 기다리는 복지여서는 안된다. 직접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우선 할 일은 가난한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어야 한다. 동정이나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의 복지를 이해하도록 쉬지 않고 설명해야 한다. 복지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 '가난할 권리'다.

노숙인은 '직장을 잃고 건강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이지만 실은 돈이나 잠자리보다 더 중요한 것, '사람이 없는 사람'이다. 빚쟁이에게 쫓길까 봐, 사업에 실패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서, 지인이나 가족과의 관계가 깨져서, 저마다의 이유로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진 사람이다.


구조 밖 이탈한 노숙인 인문학은
사람과의 관계 회복시켜 주는 일

 

사회적 관계망 속에 있는 사람은 어떻게든 삶의 활로를 만들고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관계망이 깨진 사람은 불행의 수렁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 노숙인 인문학은 구조 밖으로 튕겨져나간 그들에게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일이었다. 우선은 그들에게 곁이 되어 주었다. "당신에게도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 "당신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시켜 주고, 마침내 그들이 사람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어 다시 일어서기를 바라는 일이었다.

거리의 인문학이 올해로 스무 살을 맞았다. 노숙인을 대상으로 시작한 이래 미혼모와 한 부모 여성 가장, 교도소 수형자, 가난한 어르신, 탈학교 청소년, 장애인 등으로 대상이 확대되었다. 그사이 내겐 '거리의 인문학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20년 동안 줄기차게 활동한 덕분이다.

20년을 한 방향만 보고 달려 왔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어디로 갈지 모르겠거든 일단 가라'는 문장을 이정표로 삼으면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낭떠러지를 마주할 때도 있고 비단길을 만날 때도 있다. 나는 낭떠러지에서도 앞으로 가는 사람이다. 힘들고 어려워도 의미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우선 간다. 조금 고통스럽게 살면 또 어떤가. 고통의 끝까지 내달리고 나면 보통 사람은 보지 못 하는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고, 생각할 거리도 많아진다. 미련하고 고집스럽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나의 삶의 방식이다.


'거리의 인문학' 올해 스무살 맞아
가난한 사람들 살아갈 권리
우리가 나서서 지켜주어야


2000년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지만 한동안 글다운 글을 쓰지 못했다. 책을 낼 엄두는 내지도 못했다. 2004년 노숙인 인문학 강좌를 준비하면서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쓴 글들이 모여 지금껏 아홉 권의 책(공저 한권 포함)으로 묶였다. 이번 달에 나오는 '가난할 권리'가 열 번째 책이다. 고단한 내 삶의 여정을 되짚었고, 내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다양한 사람의 애틋한 삶도 다루었다. 혹은 엉뚱하고, 혹은 슬픈 사연들이다. 나의 삶이 그랬고, 내가 만난 사람들의 삶이 그러했다.

흩어져 있던 글을 한데 그러모았다. 경인일보 등 여러 신문에 보낸 칼럼들을 그러모았고, 이전의 책에 실었던 글들을 재구성하거나 좀 더 세밀하게 다듬었다. 거리의 인문학 20주년을 맞아 새롭게 엮은 책이어서 더욱 감회가 새롭다.

쉬 물러날 것 같지 않던 더위가 서서히 뒷걸음치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는 시간은 한결 빨라졌다. 여느 해보다 기나 긴 추석 연휴가 다가온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명절은 즐거운 한 때가 아니라 더 외롭고 더 쓸쓸한 시간이다. 코로나 이후 거리의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현저히 줄었다. 무료배식소의 줄은 나날이 길어지고 있다. 연휴 땐 그마저도 끊길까 걱정이 앞선다. 가난한 사람들의 살아야 할 권리를 우리 모두가 나서서 지켜주어야 한다.

/최준영 사단법인 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