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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우리 사회는 거대한 위선을 저지르고 있다. 공적 영역에서의 수많은 언어는 정의와 공정, 진실과 선을 외치지만 돌아선 그들은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동을 반복한다. '사람'을 말하지만 돌아서면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 당연히 해야 할 말은 언론과 정치권, 종교단체와 시민단체에서 흘러넘치지만 일상의 삶은 거듭 그 반대를 향해 치닫는다. 법치를 말하는 정권과 법조기관은 수없이 편의적으로 법을 적용한다. 사랑과 자비를 설교하는 교회와 법당은 돌아서면 바깥을 거부한 채 자신들만의 신앙에 너무도 충실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언론이 뉴스가 될 만한 소식만 전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범람하는 SNS와 가짜 뉴스, 개인 유튜브가 전하는 '아무 말 대잔치'가 문제인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언어가 시대착오적이며 분열되어 있다. 예전 같으면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을 야당대표의 단식은 너무도 조용한 그 당 의원들을 보면 뜸금없게 느껴진다. 단식도 불사하면서 그 당 대표는 누구를 향해 외치는 것일까? 정권을 향하는지, 정권에 맞서지 않는 당 내부를 향한 경고인지 헷갈린다.

청년 실업과 저출산을 고민하는 수많은 언어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가 계속 악화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인도 언론도, 또는 학계나 시민단체도 진정으로 청년을 위한 정책을 실천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의 최전선으로 매몰아 결혼 자체를 어렵게 만들면서 수백 조를 쏟아 부은 돈만 자랑한다. 그 돈이 별무소용이니 이제는 청년들이 이기적이라고 힐난한다. 이성을 사랑하여 결혼으로 맺어지고, 그 사랑의 결실인 아이를 원하지 않는 청춘이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선이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최소한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외치는 파업에도 불구하고, 이를 거슬르는 각종 정책은 기승을 부린다. 교육이 살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교육의 죽음을 부추긴다. 교사들이 수없이 교권 수호를 말하고, 심지어 죽음으로 외쳐도 결국 벗어나야했던 과거의 폭력으로 되돌아가려 한다. 지금 한국 대학은 재정난과 사회적 취업 논리에 허덕이면서 진정 필요한 지식이나 성찰적 지성의 자리를 지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다. 고질적인 대학 서열체제와 입시 지옥은 악화되기만 한다. 기층 세력과 정부는 이런 모순된 체제 안에서 권력과 기득권 수호에 안간힘을 쓴다.

두 거대 정당은 서로를 비난하지만, 그들이 가진 특권을 지키는 데는 아름답게 협조한다. 끊임없이 다양한 시민계층의 권리를 위한 제도 개선을 요구해도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기득권 유지의 정당제도, 선거제도를 바꿀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다. 기존 체제가 두 거대 정당의 정치적 이권을 확실히 보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주당 정권에 화가 나서 바꿨더니 상황은 더 악화될 뿐이다. 정치권은 정치 혐오증을 조장하면서 자신의 욕망을 지키는 데 너무도 진심이다. 법조계와 정부 부처의 전관예우라는 위선적 행태는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 그러니 모두들 이 방책을 확대시키려 온갖 잔꾀를 부린다. 그러는 동안 척박한 생활 세계로 내몰리는 것은 이를 알지 못하는 시민들이다. 알지 못하니 자신의 권리를 해치는 현란한 말에 너무도 쉽게 현혹된다. 그동안 기득권을 소유한 이들은 점점 더 기승을 부린다. 어려워져가는 나의 생활세계를 보면서 어떻게든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려 몸부림치지만 알지 못하는 사이 이 체제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종부세 감면에 기뻐할 때 수천배의 법인세감면과 부자감세가 뒤따른다. 그 사이 공동체를 위한 재정은 비어가고, 각종 세금은 보이지 않게 더 커졌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다. 위선과 무지, 욕망이 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면 과장일까? 지금 점점 커지는 위기 현상은 이 말이 결코 과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 돌아서지 않으면 파국은 가까워진다. 이번 여름의 더위가 되풀이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면 커다란 착각이다. 기후 위기가 점점 더 심해지듯이 생활의 위험도 더욱 깊어질 것이다. 나의 사적 욕망과 무지를 넘어서지 않으면 이 거대한 위선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불편하지만 이 진실을 마주할 때만이 의미 있는 삶이 가능해진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