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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무형문화재'는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담은 그릇이다. 깨지거나 탈색되는 일이 없도록 대대손손 보존해야 할 무형의 보물이다.

제1호 국가무형문화재는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이다.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사당에서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1964년에 지정됐다. 가장 최근에 지정된 국가무형문화재는 지난해 11월 지정된 '윷놀이'다. 그런데 윷놀이에는 문화재 '지정번호'가 없다. 지정번호가 폐기된 행정 용어이기 때문이다. 지정번호는 국보나 보물 등 문화재 지정 시 순서대로 부여했던 번호인데, 일부에서 문화재 지정순서가 아닌 가치 서열로 오인해 서열화 논란이 제기되곤 했다. 심지어 농악의 경우, 지역에 전래되는 형태에 따라 11-1호, 11-2호… 11-8호 식으로 번호를 부여하다 보니 '서열화 중 서열화'란 오해를 부르기도 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지난해부터 지정번호 대신 '관리번호'란 용어를 쓰고 있다. 사실 1호이든, 100호이든 모두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인 만큼, 가치를 저울질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관리번호 149번의 윷놀이에 이어 추석 등 우리 고유의 명절이 국가무형문화재에 합류할 전망이다. 문화재청은 '설과 대보름', '한식', '단오', '추석', '동지' 등 우리 민족의 5개 대표 명절을 국가무형유산 신규 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18일 밝혔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전문 기·예능이나 지식이 아닌 '공동체의 생활관습'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니, 지정번호를 폐기해 서열화를 없앤 것 보다 진일보한 파격이다.

추석을 10여 일 앞두고 있어서인지 여느 때보다 신선하게 다가온 소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취지에는 '그대로 두면 사라질지 모르니 제도권 내에서 보호하자'는 뜻도 포함돼 있다. 지금 추세로는 명절이 딱 그 모양새다. 설이나 추석 연휴에 사람들로 가장 북적거리는 곳이 공항이다. 선물꾸러미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으로 향하는 귀향객은 점점 자취를 감추고, 캐리어 끌고 출국장을 나서는 여행객이 해마다 증가하는 게 명절의 신풍속도이다. 이러다가 명절의 의미는 소멸하고 이름만 남은 국가공휴일로 전락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 문화재 지정이 명절의 본형을 찾는 변곡점이 됐으면 한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