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jpg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 전경. /경인일보DB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전 여자친구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러 살해 한 30대 남성이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인천지법 형사15부(부장판사·류호중) 심리로 19일 열린 첫 재판에서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된 A(30)씨 측은 "검찰 측이 제출한 증거에 모두 동의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수법이 계획적이고 잔혹했고, 피해자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도 상당하다"며 "피해 사실을 잘 알고 있는 피해자 가족 중 동생을 양형 증인으로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피해자의 딸 등 유족의 심리 감정 결과도 곧 제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황토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한 A씨는 담담하게 검찰의 공소사실을 들었다. 반면 피해자 유족은 "내 동생을 살려내라"며 흐느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은 이날 인천지법에 A씨를 엄벌해달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모아 제출했다.

스토킹처벌법 접근금지 조치 위반
피해자 법률대리인 엄벌 취지 탄원

A씨는 지난 7월 17일 오전 5시 54분께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 복도에서 전 여자친구인 30대 여성 B씨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 B씨에게 미리 준비한 흉기를 휘둘렀다. B씨의 60대 어머니 C씨도 A씨의 범행을 말리는 과정에서 손 부위를 다쳤고, 이후 집으로 도망쳐 경찰에 신고했다.

범행 당시 A씨는 이미 B씨를 스토킹한 혐의로 인천지법으로부터 접근금지 처분을 받은 상태였다. B씨는 지난 2월 19일 경기 하남시에서 A씨를 데이트 폭력으로 신고했고, 이후에도 A씨가 계속 찾아오자 스토킹 처벌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그럼에도 A씨는 6월께 다시 B씨 자택을 찾아갔다가 현장에서 체포되는 등 스토킹을 계속했다. 인천지법은 A씨에게 2·3호 잠정조치(접근금지, 통신제한) 명령을 내렸고, 경찰은 B씨에게 신변 보호용 스마트워치를 지급했다. 2·3호 잠정조치 처분을 받으면 100m 이내 접근은 물론 휴대폰 등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이 금지된다. 그러나 A씨는 이 조치마저 어기고 B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범행 이후 피해자 유족에게 별다른 사과 없이 법원에 6차례 반성문을 제출해 사회적으로 공분을 샀다. B씨 사촌 언니라고 밝힌 유족은 지난 8일 인터넷 커뮤니티에 "둘은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났고, 같은 직장을 다니다 교제했다"며 "동생이 헤어지자고 말하자 A씨가 스토킹을 시작했고, 팔에 멍이 들 정도로 동생을 폭행하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동생은 A씨를 스토킹으로 경찰에 신고했지만, 그가 (직장) 부서를 옮겨주는 등의 조건으로 고소를 취하했다"며 "그런데도 A씨는 스토킹을 계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접근금지 명령은 형식에 불과하고, 모든 상황이 끝난 뒤 경찰이 출동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동생의 6살 딸은 엄마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고 했다.

한편 수사당국은 A씨에게 살인죄보다 형량이 무거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살인 혐의를 적용할지 검토했다가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 살인 혐의 등만 적용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