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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이가 아빠에게┃강덕응 지음. 이야기나무 펴냄. 212쪽. 1만5천원.


냉이가 아빠에게1
책 '냉이가 아빠에게'는 한 반려견이 자신을 정성스레 돌봐준 '아빠'에게 남긴 글이다. 정확히 말하면, 강아지로 태어나 15년 5개월을 살고 세상을 떠난 반려견인 나(話者) '냉이'의 시선으로 풀어낸 한 60대 반려인이 쓴 에세이다. 저자는 자신이 '강아지의 대필작가'라고 소개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2023년, 1월 12일 나는 죽었다…(중략)…나는 죽기 일주일 전부터 곡기를 끊었고, 마지막 이틀은 물도 마시지 않았다…죽기 3시간30분 전인 새벽 2시, 마지막으로 대소변을 보러 패드가 있는 거실로 나갔다…용변을 본 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일어설 수 없었다……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빠의 손은 연신 내 몸을 쓰다듬고 있었다. 그렇게 엄마의 말씀과 아빠의 손길 속에 나는 눈을 감았다. 새벽 5시30분이었다."

60대 작가, 강아지 떠나보내고 에세이
냉이의 시선으로… 곳곳에 통찰·유머


책에는 냉이가 가족을 만난 순간부터 세상을 떠난 직후까지의 가족과 쌓은 애틋한 시간이 빼곡하게 담겨있다.

처음 만난 날 아빠가 냉이를 번쩍 안아 올리며,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너에게 호부호형을 허하노라"라고 말했던 첫 만남의 순간, 아빠의 실수로 목욕을 하다 기절해 병원에 실려간 일, 엄마·아빠와 셋이 함께한 제주도 '한달살이', 힘겨운 밭일을 하는 엄마·아빠를 응원하다 지쳐 결국 입원으로 마무리된 주말농장 체험 등의 아기자기한 기억을 냉이가 친절하게 들려준다.

책 소개처럼 누가 위라고 할 것 없이 평등한 '완벽한 사랑을 나누었던 두 종에 관한 기록'이다.

한국에서 제일 큰 광고회사에서 '광고장이'로 평생을 보낸 저자의 날카로운 통찰과 특유의 유머가 책 곳곳에 녹아있다.

책의 맨 마지막 '냉이 아빠의 말'에서 저자는 "인간은 열등하고 보잘 것 없고 나쁜 것에 '개'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나. 그래서 나는 '개 키우세요?'라는 질문에 공연히 불쾌감이 올라와 '아뇨!'라고 답한 적도 있다. 고백하건대 냉이는 나에게 반려견 그 이상이었다"면서 "냉이야 고마웠다. 사랑해!"라고 글을 남겼다.

/김성호기자 ksh9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