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 다가왔다. 엔데믹 후 처음 맞는 추석 인데다, 공휴일이 겹친 황금연휴가 되면서 기대감도 크다. 코로나19의 전례 없는 팬데믹을 겪은 지난 3년간 우리네 추석 풍경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그래도 추석은 여전히 가족의 정을 만끽하는 소중한 명절이기 때문이다.

특히 길어진 추석연휴 덕에 고향을 찾는 가족들이 많아지면서 기차표를 미리 예매하려는 이들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역 앞에 길게 줄 서서 기다리던 예전과 달리, 최근엔 100% 온라인 예매로 기차표를 살 수 있게 됐다. 이번 추석을 앞두고 이미 '클릭전쟁'이 벌어졌고 아쉽게 예매에 실패한 이들은 KTX 홈페이지를 들어가 취소표 구하기에 발을 동동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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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시절을 보는 듯한 모습이지만 이 사진은 1969년 추석 귀성 모습이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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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4일 추석 전날 수원역에서 고향가는 사람들의 기차타는 풍경. 당시엔 이렇게 타지 않으면 탈 수 없을 정도였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심지어 중고거래 플랫폼엔 '웃돈'을 얹어 추석 기간 지방을 오가는 기차표를 판매한다는 글들이 올라오자 철도공사 등에서 단속 강화를 외치고 있다. 당연히 암표를 판매하거나 구입하면 안되지만, 그래도 추석을 앞두고 고향으로 가려는 분주한 움직임들은 다시 돌아온 우리의 명절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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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28일 17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상저온 탓으로 아직 추수를 마치지 못한 농가가 많은 우리 마을에서도 추석을 맞이하는 설렘은 예년이나 다름없다. 어렵게 구한 햅쌀로 송편을 빚고, 동네추렴으로 큰 돼지도 두어마리 잡아 나누었다"

1993년 9월 28일자 경인일보는 시리즈물인 '낙향일기'를 통해 1990년대 추석을 맞은 수도권 농촌 지역의 풍경을 그렸다.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모두 서울로 보낸 윤씨네 집에서는 추석때만 되면 큰 잔치를 치르는 집처럼 부산스러워진다. 며칠 일찍 내려온 큰 딸이 장만해온 찬거리들과 밭에서 거두어 들인 채소와 나물, 생선과 고기 등을 10여명이 훨씬 넘는 대식구들의 식사와 차례준비로 떠들썩 하다. 큰 아들과 둘째가 추석 전날 내려오고 손자손녀들과 어울리다보면 정말 사람사는 집처럼 느껴진다. 이제 노인이 다 된 윤씨 내외에게는 일년에 두세번 모이는 이런 명절날이 너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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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2일 수원역 귀향 모습. 그 당시의 패션 모습도 이색적이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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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27일 수원터미널의 모습. 버스를 타기 위해선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했다. /경인일보 아카이브

추석을 맞은 경인일보는 매년 추석 특집판을 편성해 그 시절 추석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1983년 9월 20일자 '한가위'라는 제목으로 '1년의 무고함 조상께 감사'라는 부제가 달렸다. 추석은 한해 농사를 수확하는 때인 만큼 먹을거리가 풍성한데, 이때 특별판에는 전통음식을 어떻게 만드는지,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을 상세하게 실었다. 송이산적을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며 "대꼬치에 고기, 송이, 실파를 번갈아 끼워 참기름에 살짝 지지거나 석회에 굽는다.


송이는 오래 구우면 향이 날라가며 진한 양념을 하면 제맛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송편을 두고는 "쪄낸 떡을 냉수에 담궈 솔잎을 다떼고 참기름을 발라 놓는다. 오래두고 먹을 것은 솔잎을 붙인 채로 둬야 상하지 않는다"고 훈수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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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9월 28일 9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1993년 9월 28일자 '한가위 특집'에는 추석에 즐기면 좋은 전통 놀이를 소개했고 '고향가는 길 고속도는 고통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고속도로와 연결된 국·지방도 지도를 크게 그려 전국 도로 이용가이드를 제공했다. '고속도로 정비서비스 연락처'로 지역별 자동차 정비센터를 알려줬고, 추석연휴동안 고속도로 진입통제 구간도 상세하게 설명해뒀다.


지금 같으면 온라인 검색으로, 네비게이션을 활용해 1분 만에 정보를 찾을 수 있지만, 도로 위에 걸린 이정표를 보고 혹은 큰 지도책을 펴고 운전해야 했던 그때 그 시절에는 정말이지 '유익한' 정보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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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19일 수원역 앞에서 제수용품을 구매하는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차분한 추석도 있었다. 1983년 9월 22일자에는 '차분했던 추석'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추석을 가족과 함께 검소하게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며 보내자는 당국의 계몽이 주효한 듯 도내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에도 사회단체의 흐뭇한 온정이 흘렀다." 사상 유례없는 대풍년 속에서도 검소하고 차분하게 추석을 보낼 수 밖에 없는 데는 앞서 발생한 비극적 사고 때문이다.

해당 기사 옆에는 '비극의 현장 또 눈물로 얼룩' 기사가 실렸는데, 같은 해 9월 1일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김포국제공항으로 비행하던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방공군의 요격기에 격추당해 추락해 사상 최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추석을 함께 지내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모네론도 앞바다까지 달려온 KAL기 탑승 한국인 유가족들은 21일 또 오열을 터뜨렸다. 가족과 함께 가장 즐겁게 지내야 할 명절에 사랑하는 부모·남편·자식이 바다속 어느 곳에선가 홀로 잠들고 있다는 서러움과 원망에 유족들의 슬픔은 더욱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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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 18일 10면. /경인일보 아카이브

1997년 9월18일자 사회면에는 IMF 불황 속에 맞은 추석의 풍경이 그려졌다. '샐러리맨 무거운 귀경 발걸음' 기사는 직장인, 자영업자 등이 느끼는 불황의 그림자를 세세하게 풀어냈다. "인천 남동공단의 화공업체에서 영업부 차장으로 근무하는 OOO씨는 고향인 전북 완주에 내려온 김에 아예 눌러 앉을까 생각하다 17일 오후 늦게야 귀경길에 올랐다.

자동차용 약품을 만드는 회사는 기아부도 여파에다 해외수출부진까지 겹쳐 지난 7월부터 최악의 자금난에 빠졌다. 추석 보너스는 고사하고 월급마저 제때 받지 못했지만 우리 회사는 걱정 없다고 큰소리를 쳤던 O씨는 앞으로가 걱정스러워 발걸음을 무겁게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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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두고 어린이들이 예절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경인일보 아카이브

/공지영기자 jyg@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