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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
언제부터인가 사실에 대한 판단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정보에 있어 신뢰해야 할 언론의 보도조차도 믿을 수 없다. 하나의 사건에 사실이 두 개일 수는 없다. 그런데도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맞다'와 '틀리다'가 팽팽하게 맞선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판단은 더욱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사실이 근거가 되어야 하는데 사실이 뒤바뀌는 경험도 여러 차례 한 탓이다. 특히나 정치적 사건에 대하여는 더욱 혼란스럽기만 하다. 어느 날은 죄가 되었다가 어느 날 보니 무죄가 되니 그로 하여 판단하였던 것이 민망함으로 돌아오고 만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실에 입각한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판단으로 사실이 가려지고 사라지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의 사건에 대하여 이미 판단을 내려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주변의 사람을 끌어들여 사실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지경이 되었다. 패거리를 지어 낙인을 찍기 때문이다.

어느 유력정치인이 "나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것이 사실임에도 좀체 진실성이 인정되지 못한다. 어느 입장에 섰는가에 따라 '불체포 특권 포기?'라고 읽히거나, '불체포 특권 포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러한 문법적 혼란 속에 함께 언어생활을 한다는 것은 얼마나 고달프고 힘겨운 일인가? 서로 해석을 달리하는 집단과 집단 간에 어떻게 원활한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유력정치인 발언 입장 따라 해석
사건 판단 지속 번복땐 신뢰 잃어
말 바꿈과 바로 잡는건 의미 달라


이 모든 것이 사실 판단과 가치판단의 혼재로 형성되고 있는 정보 때문이다. 사실이 뒤바뀌는 세상에 가치판단이 바뀌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니 사실이 달라진다면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할 수도 있다. 의견과 진술의 수정과 취소가 가능하다. 그런데 '말을 바꾸는 것'과 '말을 바로 잡는 것'은 다르지 않겠는가? 말을 바꿀 수는 있지만 같은 사건에 관한 판단이 지속해서 번복된다면 신뢰할 수 없다. 말을 바꾸는 것과 말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그 문맥적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말을 바로 잡는 것은 자신의 오류를 스스로 인정하여 바르게 고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은 말은 바꿀 줄 알지만 바로 잡을 줄은 모르는 듯하다.

말을 뒤집는다는 것은 진실하지 못하다는 의미이고 말을 바로 잡는다는 것은 판단의 오류를 수정하여 옳은 판단을 하겠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오늘날 대한민국 정치인들 문법에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정치인들은 무엇을 근거로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으며, 무엇을 근거로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라고 하는가?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하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이니라"하였다. "군자는 미연(未然)에 방지(防止)하여 혐의(嫌疑) 살 일을 하지 말아야 하니, 참외밭에선 신을 갈아 신지 않고, 남의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을 고쳐 쓰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군자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신을 갈아 신고, 갓을 고쳐 쓴다. 국민이 오해하더라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언동을 일삼는 이유이다. 정치의 목적이 오직 권력에 있으나 국민은 국민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 유지위해 국민 보이지 않아
뱉은 말 손바닥 뒤집듯 민망할뿐

그러나 다수의 침묵하는 국민도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음을 기억하라. 적어도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것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도리이다. 그러니 자신이 뱉은 말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으면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정치인을 보기 참으로 민망하기만 하다. 그런데도 그들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무리는 무엇을 위하여 그리하는 것일까? '뻔한 거짓말도', '그 거짓을 덮기 위한 거짓말도 아름답다' 하고 '그것이 의리'라 하니 혼란스러울 뿐이다.

참으로 공천권이 국민에게 있다고 한다면 거짓을 거짓이라 하라. '불체포 특권 포기?', '불체포 특권 포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의문이 감동으로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김구용국 용인시외국인복지센터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