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탄생하기를 바랐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 세력이 집권하자마자 구정치세력과 선을 긋겠다고 열린우리당을 만들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급변했다. 민주와 반민주라는 오래된 구분선은 이 정부가 스스로 진보와 보수로 '전선'을 재편하고자 하면서 허물어져 내렸다.
탄핵 국면이 열린당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지만 단 한 번의 기회를 뒤로 하고 큰 덩치를 두 쪽으로 나누어 버린 열린당은 그 후 선거 때마다 연전연패였다. 대통령이 역대 최악의 지지율을 기록하는 가운데 차기 대통령 선거는 엄청난 표차로 당시 야당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한국 정치에서 지역 문제가 계급·계층 문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상수임을 무시한 데다가 스스로 민주·반민주의 구분선을 해체해 버린 결과였다.
그 다음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면서 당시 야권은 가까스로 재통합을 이루며 선거 막바지 국면에 다다랐다. 이번에는 TV토론에 등장한 진보당 후보의 막무가내식 '선전'은 국민들을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불렀다.
범죄혐의 정치인 체포동의안 가결
찬성표 색출한다니… 무서운 세상
말·행동의 자유가 민주주의 초석
사실은 이 선거 전부터 야당은 당내에 이질적인 분파나 정견을 허용하지 않고 주류파가 독주하는 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당시 야당은 전통적인 야권에 '386 세대'로 정치에 입문한 이른바 '운동권', 그리고 새로 등장한 안철수 세력 등으로 나뉘어 있었다. '386', 이제 '586'이 된 운동권 정치인들에 의해 떠받들어진 지도부는 다른 분파들을 일방적으로 고사시키거나 쫓아내는 행태로 일관했다는 해석이 많다.
18대 대통령의 시대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분열된 야당을 상대로 유리한 국면에서도 국민 정서를 거스르며 참패를 기록했다. 민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지만, 국민의당이 호남 지역을 석권하면서 향후 대통령 선거를 위한 숙제를 떠안아야 했다.
선거에 이기고도 야권은 무기력했다. 정부는 의혹의 세월호 참사로 인해 벌어진 사태를 전격적인 수습책보다는 언론매체와 뉴스를 통제, 조절하는 쪽으로 일관하다 결정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이 시기에 지리멸렬한 제1야당을 부축한 것은 당시 '팟빵'이라 불리던 인터넷 신흥 매체였다. 지금은 또 다른 언론 '전횡'의 대명사가 되다시피 한 김어준씨를 그 시절에 지연된 정의의 사도처럼 여긴 사람들이 많았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다시 한 번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제1야당의 선거전략 가운데 정말 중요했던 것은 인터넷 등 여론매체를 '조작'하는 것이었다. 이후 벌어진 '드루킹' 사건이, 제2야당 후보와 제1야당 후보의 지지율이 인터넷 조작을 통해 극적으로 역전되던 순간을 설명해 준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이 '드루킹' 사건을 자초한 것도 김어준 씨의 '입'이었다. 그가 이후 집권한 정부의 행태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 일관한 것은 그 책임을 의식한 탓이었을 것이다.
세월가니 민주당 안에서 독재하고
밖에서 與가 자유·민주주의 외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대통령 선거 와중에 민주당의 이상 기류가 점점 더 노골화되었다는 것이다. 누구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는 게 선거 캠페인이 되고, 법을 어긴 사람도 공인이 될 수 있고, 그걸 비판하거나 반대하면 '검찰 독재' 편이나 드는 것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집권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분파, 소수파를 억압하는 행태는 새로운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에도 그칠 줄을 모른다.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인의 체포 동의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색출을 한다고 하니, 세상에나 무서워서 무슨 정치를 하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이제 정말 다시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할 말을 하고, 하고 싶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초석이다. 세월이 오래 가니 민주당이 안에서 독재를 하고 밖에서 집권 정당이 자유를, 민주주의를 말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국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