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과 서양음악은 서로 다른 메커니즘으로 뿌리를 내렸다. 그래서인지 음악을 접하는 방식에서도 뚜렷한 문화적 차이를 보인다. 서양음악에서 무대와 관객이 철저히 분리돼 있다면 국악에서는 연주자와 관객이 어우러지는 '마당'이 무대다. 가령 교향곡 연주회장에서는 숨죽이며 공연을 감상하다 모든 악장이 끝나고 나서야 비로소 박수를 칠 수 있지만, 판소리 공연에서는 관객이 공연 도중 수시로 '얼쑤'라고 추임새를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마치 물과 기름 같은 두 장르를 접목시킨 선구자가 천재작곡가 윤이상(1917~1995년)이다. 그는 서양의 오선지에 처음으로 한국적 정서를 새겨넣은 음악가다. 대표작이 옛 궁중 제례악(祭禮樂)을 오케스트라 연주곡으로 만든 '예악'으로, 이 곡의 시작과 끝에는 국악기인 '박'(拍)이 등장한다. '예악'은 1966년 도나우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됐는데 국악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계기가 됐다.
예악이 초연된 지 거의 반세기 만에 한 뮤지션에 의해 다시 한 번 국악과 서양음악의 획기적인 '크로스 오버'가 시도된다.
중장년층이면 누구나 아는 '못다 핀 꽃 한송이'의 작곡가 겸 가수 김수철이 그 뮤지션이다. 젊은 층을 위해 '치키치키차카차카'로 시작하는 애니메이션 '날아라 슈퍼보드'의 주제가를 작곡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게 낫겠다. 그는 80년대 가요대상 남자가수상을 받는 등 대중가수로서 정점에 올랐을 때, 화려한 무대를 뒤로 하고 우리 소리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뛰어들었다. 그로부터 40여년 간 25장이 넘는 국악 앨범을 내면서 국악의 현대화에 열정을 불태웠다.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음악으로 표현한 '팔만대장경'과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 영화 '서편제'의 주제가도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탄생했다. "전통문화는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그걸 그 시대에 맞게 현대화한 콘텐츠가 있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그가 밝힌 국악에 파고든 이유다.
그가 다음 달 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지금까지의 결과물을 집대성한 '데뷔 45주년 기념공연'을 갖는다고 한다. 특히 '동서양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함께 하는 이 공연에서 지휘봉까지 든다고 하니 그의 변신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의 별명은 그가 이끈 밴드의 이름과 같은 '작은 거인'이다. 과연 명불허전이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