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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훈 논설위원
바이올린의 활이 현의 중앙 부위를 스치면 부드러운 소리가 난다. 반면 브리지 근처에 활을 갖다 대면 중앙에 비해 거칠고 둔한 소리가 난다. 현의 위치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이는 음이 발산하는 위치에 따라 파동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로 연주자는 이를 활용해 음색에 변화를 주면서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이런 원리는 손가락으로 현을 튕기는 기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얼마 전 인천이 낳은 세계적인 클래식기타리스트 박규희의 연주를 직관한 적이 있다. 경인일보 기획물 '아임 프롬 인천'의 취재차 그를 인터뷰하면서 한 곡 연주를 부탁했는데, 이 글은 충격적(?)이었던 그날의 감상 후기다. 참고로 이해를 돕기 위해 클래식기타에서 사용되는 손가락 표기법을 소개한다. 오른손의 손가락 기호는 p(엄지), i(검지), m(중지), a(약지), ch(소지)다.  


클래식기타리스트 박규희 '트레몰로' 연주
네손가락 아닌 세손가락 주법 타의 추종 불허


클래식기타 주법 중에 '트레몰로'라는 게 있다. 기타를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이란 곡에 사용되는 주법이다. 음을 고르게 유지하는 게 관건인 난도 높은 주법이다. 박규희는 '트레몰로의 여신'이라 불릴 정도로 이 주법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수 백년간 전해 내려오는 트레몰로의 정형화된 주법은 'p-a-m-i' 순서로 연주하는 것이다. 그런데 박규희는 그날 약지(a)를 아예 쓰지 않는 'p-i-m-i'주법으로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을 연주했다. 네 손가락에 특화된 트레몰로를 세 손가락으로 구사한 것이다. '그게 뭐 대수냐'고 하겠지만 기타리스트 입장에서는 자동차에 운전대 대신 자전거 핸들을 갖다 붙이는 것에 비유할 정도의 파격이다. 박규희 또한 3년여 전까지만 해도 '네 손가락'주법으로 트레몰로를 연주했다. 그가 9차례 국제 콩쿠르를 석권하는 동안 이 주법은 그의 필살기였고, 트레몰로는 그의 상징이 되다시피 했다. 그런 그가 기존의 주법을 버렸다는 것은 충격 이상이었다. 혼신을 다해 쌓아 올린 견고한 성을, 그것도 아름답다고 찬사를 받는 성을 자신의 손으로 무너뜨린 셈이다. 더욱이 빠른 속도가 필수인 트레몰로에서 약지를 빼면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다. 이런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박규희가 '세 손가락' 주법을 택한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바로 음색이다.

앞서 소개했듯이 기타의 경우, 탄현 위치에 따라 음색이 달라진다. 그래서 다른 현을 담당하는 엄지는 논외로 치고, 손가락 두께를 1㎝라고 가정할 때 네 손가락으로 연주하면 한 현에서 탄현위치의 간격이 3㎝ 가량 벌어진다. 그 간격을 줄여 최대한 일관된 음색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익숙한 1㎝(약지)를 버린 것이다. 물론 기자의 막귀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음색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주법의 완성도가 한층 높아지는 것은 분명하다.

현 간격 3㎝ 줄여 음색 유지위해 1㎝ 버린것
정치권, 국민불편 외면 대화·타협 1㎝도 못가


박규희가 인상깊게 읽었다는 책은 '깊이에의 강요'(파트리크 쥐스킨트)라는 단편이다. 소설 속에서 유망한 젊은 예술가는 '당신 작품엔 깊이가 없다'는 평을 듣고 '깊이'를 찾으려 애쓰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박규희는 현실에서 '깊이'를 찾다 1㎝의 혁명을 이끌어냈다. 앞으로 트레몰로 교수법에 일대 변화가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박규희가 세 손가락 트레몰로 주법을 완성시키기까지는 1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를 그저 '비르투오소'(연주 실력이 매우 뛰어난 대가)의 예술혼으로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에피소드에서 함의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완성도를 높여야 할 것은 악기 뿐만이 아닐 것이다. 파동유형이 다를 때 각기 다른 음색으로 고막을 울리는 현의 물리현상은, 혐오의 음파로 가득한 정치권을 닮았다. 대화와 타협을 위해 단 1㎝도 전진하지 않는다. 국민의 불편한 시선은 아랑곳없다. 사실 정치권이 민심의 1㎝에 천착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 사회가 교권과 학생 인권 사이의 간극을 1㎝라도 줄이고자 노력했다면 안타까운 죽음도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 박규희의 가녀린 손가락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1㎝의 그늘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야 공동체의 완성도를 높일 1㎝의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이다.

/임성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