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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노들섬을 잇는 한강철교와 한강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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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강대교 지나 노량진 가는 길에 노랫소리가 들린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 '노들강변'은 경기민요 명창들의 애창곡이다. 세마치장단에 맞춘 일제강점기 대중음악인 신민요 가락이다. 요즘 트로트가 전국을 강타하듯, 100여 년 전 민요풍 음악이 낯설지 않다. 왜일까? 힘든 삶 속에서도 흥겹게 흘러나왔던 노래였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가장 구성진 노랫소리가 경기민요로 세상에 알려졌다. 세상사 모든 한(恨)을 한강에 띄워 보내는 심정인데, 노랫말과 달리 리듬은 경쾌하니 인생을 달관한 것이 분명하다. 


노들강변에 노들섬이라. 한강 한가운데 노들섬 지나 노량진 가는 길 위에 노래가 경기민요라니… 도대체 이곳은 어디일까? 노들강변 노래 속 노들은 '백로가 놀던 돌'이고, 노들 나루터가 한강변 노량진이다. 한강철교가 있기 전 노량진은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도성 밖 성저십리 용산에서 한강을 건너면 바로 경기(京畿)였다. 배 타고 노들섬 지나면 서달산 기슭 언덕에 커다란 누정이 있었다. 이곳에 앉으면 한강 따라 목멱산과 응봉 아래 동호와 송파나루에서 떠오르는 해도 볼 수 있었다.

 

용이 머물고, 말이 머리 치켜들 듯
봉황이 날개 펼쳤던 정조 머물던 곳
아버지 묘인 '현륭원' 자주 행차
노들강변 주정소 애틋해 보이는건
그리워하는 마음 담겨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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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양봉저정에서 바라본 한강 너머 롯데타워와 남한산성

햇살이 강물에 출렁거리고, 바람소리 따라 날아가는 왜가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한강 너머 빌딩과 빌딩 숲 사이로 삼각산과 목멱산이 보이고, 강물 따라 롯데타워와 남한산성까지 보이는 최고의 길지다. 이곳에 도성 밖 한강 건너 노량행궁의 중심 건물이 있다. 노량행궁 터가 있는 언덕 내려와 노들섬에 한강을 잇는 커다란 다리도 있었다. 한강철교와 한강대교는 100여 년 전 서울과 경기를 잇는 철로이자 대로였다. 세상이 바뀌는 순간 노들강변 백사장 모래와 만고풍상 비바람이 강물을 따라 말없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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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능행길에 머물던 노량행궁 용양봉저정

한강에 다리가 없었다면 어떻게 오갔을까? 한강 따라 옛길을 말없이 걷다가 상도터널 가기 전 오래된 기와집으로 들어간다. 비 그친 새벽녘 인적이 드문 시간 돌계단 올라 현판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수없이 지났던 길목, 차량과 차량 속에서 한 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공간이다. 책 속에서 보았던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와 꿈같던 배다리 실체를 상상케 한다. 도성 안 창덕궁에서 사도세자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화성 능행길 그림이다. 숭례문 나와 용산강 따라 노들섬에 48척 배에 줄을 달아 건넜다. 3개의 홍살문과 수많은 깃발 속에 왕의 행차를 기다리던 모습들이 불현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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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화성행행도' 중 '한강주교환어도'. 그림 상단이 용양봉저정이고, 그림 하단 모래사장이 한강 한 가운데 노들섬이다. /국립고궁박물관 홈페이지 캡쳐

배다리 놓은 후 한강을 건넜던 정조의 모습에 숙연한 마음이 든다. 6천여 명의 인원과 1천400여 필의 말과 가마가 동원된 조선 최대 규모의 행차였다. 혜경궁 홍씨 환갑에 사도세자의 묘소인 현륭원까지 정조는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다. 배다리를 건넌 후 잠시 머물던 쉼터, 아니 아버지 사도세자를 만나러 가기 전 마음도 추스렸던 공간이 보인다. 8일간 능행길에 정조는 어머니와 함께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또한 아버지 묘소인 현륭원 참배 후 도성 안으로 가기 전 몸과 마음을 다잡았던 행궁 터가 바로 용양봉저정(龍驤鳳翥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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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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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오를 저

 

 

용양봉저정은 용이 머물던 곳, 말이 머리를 서서히 치켜들 듯 봉황이 두 날개를 사뿐히 펼쳤던 정조가 능행길에 머물던 곳이다. 효심이 지극한 아들은 왕이 되어 사도세자인 아버지 묘가 있는 현륭원을 자주 행차하였다. 어가가 머물던 공간, 휴식을 취하며 수라를 들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한강이 보이는 노들강변에 왕이 잠시 머물며 식사하던 주정소(晝停所)가 애틋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정조의 마음이 이곳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효심이 가득한 용양봉저정에서 보름달을 보며 부모님을 생각해 본다.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삼 망령으로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갔나…'.

경기민요 '노들강변' 노랫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는다. 노랫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흐르는 강물소리가 노들강변을 홀로 걷게 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느릿느릿 걸어보면 세상이 새롭게 다가온다. 길 위에서 길을 찾듯 정조의 능행길 함께 걸어볼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