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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원이 지난 3일(현지 시간) 케빈 매카시 의장 해임결의안을 가결했다.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공화당내 극우 계파인 프리덤 코커스 계열 의원 8명이 민주당과 합심해 자당 출신 의장을 끌어내린 것이다. 미국 권력서열 3위로 대통령 유고시 승계 2순위자인 정치 거물이 당내 소수 반란에 당한 치욕이다.

미국 하원의장은 관례상 다수당의 원내대표가 맡는다. 2015년 하원 다수당인 공화당 원내대표였던 매카시의 하원의장 선출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입이 망쳤다. 하원 벵가지 사태 특별조사위원회가 민주당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저격용이라고 실토한 인터뷰로 대선 정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선거 여론이 악화되자 하원의장 경선을 포기했다.

지난 1월 10석 차이로 공화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기회가 다시 왔다. 그때도 프리덤 코커스가 발목을 잡았다. 지지의 대가로 지역구 이익을 왕창 챙길 작정으로 과반 지지를 열네번이나 무산시켰다. 매카시는 프리덤 코커스 의원들이 원하면 언제든지 의장을 해임할 수 있도록 불신임투표 요건을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단 시켜보고 마음에 안 들면 자르라는 제안으로 강경파를 설득한 끝에 15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당선됐다. 하원 의사봉을 쥐기까지 겪은 우여곡절과 수모의 기록들도 하나같이 역대급이다.

매카시는 열렬한 트럼프 추종자로 프리덤 코커스 못지 않게 강경 보수였다. 하지만 하원의장에 취임 이후엔 정파를 초월한 행보를 보였다. 백악관과 민주당과 대화로 부채한도협상을 타결하고 연방정부 셧다운을 지연시켰다. 지도자급 정치인들이 정파를 초월해 타협하는 미국의 정치문화를 지켰다.

이를 야합이라며 공화당 강경파 의원 1명이 의회 규정에 따라 공개적으로 불신임안을 제출했다. 반란이라는 표현은 어색하다. 매카시는 결과에 승복했다. 의회는 혼란에 빠졌지만, 누구도 혼란의 당사자를 지목하지 않는다. 절차에 따라 문제를 제기하고, 표결하고, 승복하고, 책임질 뿐이다. 혼란은 새로 시작하면 해소된다.

당 대표 체포동의안 찬성 의원을 색출하는 한국 정치 문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국 정치의 위엄이다. 의회 점거를 선동한 트럼프에게 매카시를 비롯한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이 등을 돌렸다. 선을 지켜 신뢰와 위엄을 유지하는 미국 정치이다. 매카시의 역사적 수모마저 부러운 건 왜인가.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