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이 다시금 서울과 비(非)서울로 갈라지고 있다. 교통카드 한 장이 그은 경계다. 월 6만5천원으로 마음껏 출퇴근하는 서울시민과, 2~3시간 통근에 공공요금 줄인상까지 맞닥뜨린 경기도민. 관내 교통망을 촘촘히 다지는 서울시와, 팔도를 집약한 31개 시군을 포용하려다 올해마저 버스 파업을 앞둔 경기도.
배턴은 경기도로 넘어왔다. 갈라진 수도권을 통합할 과제를 떠안은 경기도는 어떤 '카드'를 내놓을 수 있을까. → 편집자 주
매달 6만5천원 '기후동행' 정기권
서울 아닌 지역 출발·도착은 제외
"죄송해요, 저거 놓치면 안 돼요." 4일 오전 8시께 성남시 판교역에서 만난 30대 직장인 여성은 황급히 서울행 열차로 달려갔다. 이날 판교역 신분당선 승차장은 엿새간의 황금연휴가 언제였느냐는 듯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로 가득하다.
수원부터 용인, 성남 등 경기남부권 주요 도시를 관통해 서울로 향하는 신분당선은 수도권 전철보다 2~3배 비싼 요금에도 매일 만차가 거듭된다. 용인에서 광화문으로 출퇴근하는 윤예란(50·여)씨는 "비용이 아무리 비싸도 정시성과 편의를 고려하면, 결국 돌고 돌아 신분당선"이라고 했다.
압도적인 교통편의로 비싼 요금도 감수해 온 도민들이지만, 추가 인상 소식에는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신분당선 요금은 현행 3천600원에서 오는 7일 4천100원으로 인상을 앞둬 왕복 교통비만 8천원이 넘을 전망이다.
성남에서 을지로로 출근하는 김보영(46·여)씨는 "출퇴근길 신분당선은 선택이 아닌 필수이고 지금도 매달 15만원 이상 교통비로 지출하는데 이마저 오른다니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또 다른 주요 출퇴근 편인 광역버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미 1년여 동안 '전면 입석금지'가 이어져 대기시간 장기화 등 여러 불편을 낳아 왔다. 같은 날 수원 우만동에서 광역버스로 출근하던 권현강(30대)씨는 "입석 금지 이후 운이 나쁘면 버스를 3대씩 그냥 보내기도 하는데 교통편이 한 노선뿐이라 놓치면 지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쟁 같은 출퇴근길에 교통요금 인상까지 겹쳐 시름이 깊은 경기도민 사정과 대조적으로, 서울시민은 무제한 통합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 도입에 기대감이 부풀고 있다. 기후동행카드는 매달 6만5천원으로 서울 지역의 대중교통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통합정기권 정책으로 서울시가 내년부터 시범 적용한다고 발표했으나,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출발·도착하는 노선은 이용이 불가능하다.
서울서 소비·경제활동하는 도민들
가뜩이나 교통비 부담도 큰데 황당
혜택 차이에 지역민 갈등으로 번져
특히 통합 생활권으로 분류되는 수도권에서 거주 지역으로 혜택이 나뉘는 상황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경기도민 이승은(24)씨는 "서울에서 만난 학교 친구나 직장 동료들 중 경기도에 거주해도 모두 서울에서 소비하고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수도권에서 이동시간이 길다는 것 외에 서울시민과 차이를 느낀 적 없는데, 이번 정책은 오히려 경기도민이 교통비용 부담이 막대한데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고 했다.
실제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경기지역에서 서울로 통근·통학한 인구는 125만6천명(2020년), 127만7천명(2015년)에 달했던 반면, 서울에서 경기지역으로 이동하는 인구는 52만3천명(2020년), 58만3천명(2015년)에 불과했다.
나아가 이러한 혜택 차이가 수도권 내 지역민 갈등으로 비화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기후동행카드 정책 소식을 알리는 일부 SNS 게시글에서는 '서울지역 정책인데 왜 경기도를 고려해야 하느냐'는 댓글과 '경기도와 도민 사정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라 주장하는 댓글이 맞붙기도 했다.
김정화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서울과 경기도·인천은 같은 생활권을 공유하는 만큼, 현재 발표된 정책은 당연히 서울시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뚜렷한 한계점"이라면서 "지자체 간 사정이 상이한 탓에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경우 효율성의 정도를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김산기자·김지원·이영지수습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