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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매년 안동 병산서원을 찾는다. 병산서원은 사적 제 260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다. 부분적으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기는 하지만 아스팔트길이 아닌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높지 않은 산줄기들과 낙동강 상류의 휘돌아나가는 모습이 여유롭고 정겹다.

병산서원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 30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병산서원은 고려시대부터 존재했던 교육기관이었다. 얼마나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병산서원은 서애 유성룡의 학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서원이다. 1978년 3월31일 사적 제260호에 지정되고, 2010년 7월31일과 2019년 7월10일 각각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문화재청은 2010년 6월 안동 병산서원을 포함한 하회마을 일대와 양동마을 일대를 한국의 역사마을로 지정하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를 신청했다. 그 결과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성룡의 학문·업적 기리는 서원
정문 복례문 넘으면 고고한 모습
웅장함에 저절로 옷 매무새 고쳐
연못에 그늘 드리우는 배롱나무
낙화된 꽃잎들 아름다움에 황홀


"유성룡을 파직시키라." 조선 14대 임금 선조에게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1598년 11월19일의 일이었다. 임진왜란을 겪고 있는 중 영의정으로서 국난 수습에 앞장섰던 이름 난 재상 유성룡은, 전란이 끝나갈 무렵 북인들의 정치적 음해와 공격에 한 달 넘게 고초를 겪으며 수세에 몰려 있었다. 계속되는 상소를 견디다 못한 선조는 유성룡 축출을 명했던 것이다. 유성룡은 일본군이 철수했다는 기쁜 소식을 듣기도 전에 재상이라는 관직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같은 날인 1598년 11월19일, 남해 해전에서 중대한 사건이 일어나 백성들이 가슴을 치는 일이 벌어졌다.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으로 퇴각하는 일본군에게 엄청난 타격을 줘 노량해전을 대승으로 이끈 이순신 장군이 전투 중 전사한 것이다. 파직당해 낙향할 처지에 있던 유성룡은 절친한 사이로 함께 국난 극복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슬픔을 느꼈을 것이다. 노량해전 직후 유성룡이 쓴 애도시 '애이통제(哀李統制)'의 초고에 적힌 원문이다.

'한산도가 어디에 있는가(閑山島在何處)/큰 바다 가운데 한 점 푸르네(大海之中一點碧)/고금도는 어디에 있는가(古今島在何處)/아득한 남쪽 바다 한 터럭이 비껴있네(渺渺南溟橫一髮)/당시에 백번 싸운 이 장군은(當時百戰李將軍)/한 손으로 하늘 가운데의 벽을 붙잡았네(隻手扶將天半壁)/고래를 모두 죽이니 피가 바다에 가득하고(鯨예戮盡血殷波)/치솟은 화염이 물의 신이 사는 소굴을 다 태웠네(烈火燒竭馮夷窟)/공이 높은데도 참소와 질투를 면하지 못하니(功高不免讒妬構)/힘써 싸우기를 꺼리지 않아 몸을 나라에 바쳤네(力戰不憚身循國)'.

이순신 장군의 전사 중에도 고래를 모두 죽이니 피가 바다 가득하고 치솟는 화염이 물의 신이 사는 소굴을 태웠다고 노래해 왜군을 수장시킨 용감한 이순신 장군을 높이 찬양하는 시를 남겼다. 자신과 인연이 깊었던 이순신의 전사를 나라에 목숨을 바친 '순국'이라 애도하면서, 두 사람 다 승전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절절하게 드러냈다. 특히 '공이 높아 참소와 질투를 면하지 못하니'에서는 삭탈관직 당한 자신의 처지를 빗댄 감정이 읽힌다. 유성룡은 훗날 고향에서 집필한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전사한 노량해전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병산서원은 철폐되지 않았으며, 유림 선현을 모시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일제강점기에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졌으며 강당은 1921년에, 사당은 1937년 각각 중건되었다. 매년 음력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례를 지내고 있다.

정문인 복례문을 넘어서면 병산서원의 고고하고 웅장한 모습이 막아선다. 저절로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된다. 왼쪽으로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아름드리 배롱나무를 만나게 된다. 연못에 낙화된 배롱꽃잎들이 아름다워 진 꽃인지 핀 꽃인지 황홀하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