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의혹과 관련한 경찰 고소장이 연달아 접수되는 가운데(10월 10일자 1면 보도='수원 일가족 전세사기단' 부동산 법인만 15곳) 이들이 다수의 부동산 법인을 거느리며 임대업을 펼쳤던 배경에는 관련 기관의 단속망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법인을 쪼개 운영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된다.
10일 중소기업현황정보시스템 등에 따르면 임대인 정모씨와 배우자,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운영하는 부동산 관련 법인은 모두 18곳이다. 지난 2014년 수원에 첫 법인을 설립한 뒤 해마다 늘려간 이들은 전세가격 변동이 극심하던 2~3년 전 10곳이 넘는 법인을 새로 세우는 등 공격적으로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상식… 악성임대인 회피 의심"
2020년 HUG 제도 도입 이후
법인 집중적으로 늘려 의혹 가중
고소 64건·피해 80억으로 확산
이런 가운데 이들이 사기 의도를 갖고 단속망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 법인으로 나눠 임대업을 벌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 18곳의 법인 중 지난해 기준 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가 제출된 법인은 2곳에 불과했다. 대다수 법인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아야 하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상 외부감사 대상은 법인 자산이 120억원 이상, 부채총액 70억원 이상, 매출액이 100억원 이상 조건 중 일부를 충족한 법인으로 규정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법인을 한두 개까지 필요로 쪼갤 수 있지만 10개가 넘게 쪼개는 것은 상식적인 행동이 아니다"라며 "비효율적인 이러한 행동은 경영 외 다른 목적이 있는 것으로 의심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더구나 전세사기 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진 뒤 관련 기관이 내놓은 단속 책에서도 법인 쪼개기를 통해 회피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허그)는 지난 2020년부터 소위 '악성임대인'(집중관리 다주택채무자) 제도를 도입해 보증사고 대위변제 3건 이상, 미회수금액 2억원 이상의 임대인들을 사기 위험이 있는 것으로 간주해 명단을 관리하고 있다.
정씨 일가족 소유 법인이 허그의 해당 제도 도입 이후에 집중적으로 늘어난 것을 고려할 때 악성 임대인 명단에서 피하고자 고의적으로 법인을 쪼개 운영했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지난해 7월부터 국토교통부가 수사기관과 동조해 실시 중인 전세사기 특별단속에서 정씨 일가족과 이들이 소유한 법인들은 지난 6월 중간결과 발표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 단속은 허그의 악성임대인 명단을 활용해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전국대책위) 안상미 공동위원장은 "법인을 쪼개면 허그에서 이들을 조직 단위가 아닌 개인 임대인으로 보고, 그 임대인의 물건에 문제가 없으면 문제가 터지기 전까지 계속 가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쪼갰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은 피해자들을 위한 심리지원 전담팀을 꾸리는 등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정씨 일가족과 법인을 대상으로 접수된 고소장은 이날 기준 모두 64건에 피해액 80억여원으로 늘어났다.
/김산기자, 김지원·한규준 수습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