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면이 통창으로 된 이 카페는 어항 같았다. 12차선 도로가 정면에 있어 길 건너의 사람이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천천히 걸어와 건널목을 다 건너고 가게 옆으로 빙 돌아서 해변으로 향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보듯 사람들이 내 쪽으로 다가와 길가로 돌아가는 모습을 감상했다. 사람들은 해변으로 향하는 중이거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중이라 그런지 독특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치고 행복한, 설렘이 살짝 들어있는 표정. 유리 너머 보는 풍경이기 때문에 모두 스크린 속 배우들 같았다.
내마음의 쉼표 같은 속초의 카페
여행중인 사람들 표정 보는 재미
책속 문장까지 추출 살뜰한 독서
그러다 노란 테이블로 돌아와 - 이 카페의 단 하나뿐인 넓은 탁자- 내 노트와 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침 들고 온 책의 표지와 탁자가 똑같이 노란 색인 것이, 이 우연한 일치가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줄 친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필기 자체를 참 좋아한다고. 작업을 시작할 때 나는 우선 책을 읽고, 책 속에서 나의 마음을 건드렸던 문장을 펜으로 옮겨 적는다. 그러다가 떠오른 생각이 있으면 연필을 꺼내 구분하여 적는다. 노트에 필기하는 순간은 글을 쓰기 위한 예열 단계에 해당한다. 다이빙 선수가 수영복을 입고 실내로 들어와 준비운동을 한 다음에 다이빙대에 올라가 하나 둘 셋, 바를 튕기고 마침내 입수! 하기 전까지 거치는 단계라고 할까.
줄 친 문장을 옮겨 적으면 원석 가운데 빛나는 부분을 내 필체로 캐내어 '물질화'하는 느낌이 든다. 사진으로 치면 인화하는 기분이랄까. 독서를 할 때 문장에 줄을 치는 것은 책 속에서 찰칵찰칵 필름을 찍는 것 같다. 줄 친 부분을 필기하는 것은 필름 상태를 인화해 내 것으로 간직하는 일이다. 한참 후에 읽어보면 책 속의 문장이 재배열되면서 은근히 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이따금 화살표로 표시해놓고 내 생각을 덧붙이는 부분이 나오는데, 그건 책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지금 쓰고 있는 내 글에 대한 아이디어일 때도 있고,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 것일 때도 있다. 아무튼 메모까지 추출했다면 그 책은 살점을 다 떼어내 먹고 뼈 국물까지 우려먹은 살뜰한 독서가 되는 것이다.
호화로운 사흘간 아침 선물 같아
독자·작가로 뒤섞여 더없이 행복
이 호화로운 요리를 노란 테이블 위에서 날마다 맛보던 사흘간의 아침은 나에게 저절로 주어진 선물 같았다. 노란 테이블 위에서 노란 표지의 소설책을 읽고 메모를 하다가 이따금 고개를 드는 순간은 '길과 종이와 커피와 음악'이 즉흥적으로 뒤섞인 감각을 선사했다. 그것은 독자인 나와 작가인 내가 특정 상태에서 풀려나와 뒤섞이는 상태로 이어졌다. 이 순간 나는 더없이 행복한 유령이다. 강렬하게 책 속에 사로잡혀 있다가, 공간과 시간에 조응하여 나의 문장을 더듬더듬 써나가는 순간에 나는 항상 나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비워진 자리에 들어선 것들을 지켜보며 글을 쓰기 때문에 유령처럼 변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유령작가'란 자기 글에 자기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대필작가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나는 유령이 되는 순간이야말로 작가로 넘어가는 트랜스 상태라고 생각한다. 글쓰기는 대부분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쓰기'가 발생하는 첫 순간은 지극히 감각적이고 행복하다. 이것이야말로 작가들이 누리는 최상의 기쁨이 아닐까.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