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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제우 작가
지난 8일 영국 스포츠 채널 TNT Sports는 SNS에 8초짜리 손흥민 영상을 올렸다. 순식간에 조회수 1천300만회를 넘으며 화제를 모았다. 8초에 담긴 영상은 그저 장내 인터뷰가 끝나고 진행자 3명과 악수 뒤 돌아가는 손흥민의 모습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각국의 축구팬들이 찬사를 보낸 것은 손흥민이 탁자에 마이크를 놓을 때 두 손으로 정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진행을 보던 레전드 선수 리오 퍼디난드는 "정말 멋진 남자"라며 감탄하고는 매혹적인 예의를 자기도 똑같이 하겠다고 말했다. 퍼디난드는 김민재와 같은 중앙 수비수 출신으로 탄탄한 피지컬에 강렬한 카리스마가 인상적인, 전통의 이상적 남성상에 부합하는 캐릭터다. 다른 진행자 린지 힙그레이브 역시 손흥민은 축구계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중 한 명이며 경기장 안팎에서 품격 있는 행동으로 빛나는 롤모델이라고 치켜세웠다.

인터뷰 전체를 보면 동서양의 격식과 문화를 훌륭히 조화시키는 손흥민을 볼 수 있다. 손흥민이 마이크를 공손하게 다룬 것은 한국적인 예의와 그만의 세심함이 결부된 행동이다. 동시에 그는 스탠딩 인터뷰에서 다른 진행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대화하고 악수도 한 손으로 한다. 진행자 두 명은 축구계 대선배들이고 다른 한 명은 13살이 많은 40대의 여성 아나운서이므로 한국이었다면 여러 모로 큰 무례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것이다. 손흥민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코스모폴리탄으로서 각기 다른 문화의 조화에 능숙하기에 호감도가 매우 높은 스타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인터뷰후 마이크 조심스레 놓아
8초짜리 영상 세계 팬들 찬사
다정·세심함 몸에 배어 있어


피치 위의 여성 아나운서가 40대라는 게 한국으로선 문화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못지 않게 특기할 점이 있다. 기존의 남성성과 다르게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겸비한 현대적 남성상의 모범으로 손흥민을 꼽는 축구팬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영국은 세계가치관조사의 성평등 의식조사에서 한국과는 정반대로 매우 높은 성평등 의식을 보여준다. 소수의 남성인권 옹호자들이 사회의 여성화가 문제라고 여길 뿐이다.

손흥민은 여성적인 특성으로 여겨져온 다정함이나 세심함이 몸에 배었고 그와 동시에 강력한 다리 힘을 바탕으로 세계 정상급 공격수로 우뚝 섰다. 전통적인 여성성과 남성성 중 좋은 것들만 골라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장으로 선임된 후 한층 두드러진다. 원래부터 손흥민은 나이 어린 신입 특히 유색인종 선수들, 또는 후보 키퍼들을 특유의 배려심으로 대하며 이들의 소외감을 감싸주는 사람이었다. 주장이 된 이후로는 시합에 대해서도 리더답게 따끔한 지적을 마다 않는다. 신입 수비수 반 더 벤은 손흥민이야말로 경기장 안에서도 밖에서도 리더라고 전한다. 손흥민이라는 화합과 조화의 전문가는 팀의 성적과 수익의 측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손흥민의 언행은 그 자체로 돋보이는 문화이며 이는 선진국에서 특히 강조되는 대목이다. 앤지 감독은 손흥민의 주장 선임 이유에 대해 거의 모든 그룹과 잘 섞이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축구팀이자 글로벌 대기업인 토트넘 홋스퍼의 주전 11명은 인종과 국적이 모두 다르다. 교체 및 부상 선수까지 더하면 더욱 다양해진다.

선진국 가치 평등·다양성·포용
문화적 규범 누구보다 잘 구현


선진국에서 윤리와 수익을 좇아 공통으로 강조하는 가치는 평등과 다양성 그리고 포용이다. 손흥민은 이 같은 문화적 규범을 누구보다 잘 구현해낸다. 단지 축구팀의 끈끈한 팀워크를 위해서만 손흥민이란 문화가 필요한 게 아니라 손흥민을 통해 달성되는 문화나 규범들이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 모두 중요한 것이다. 손흥민이 체화한 문화자본이 널리 뿌리내리는 것은 최전방의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 중 하나이다. 손흥민은 아버지의 헌신적인 교육을 통해 자만하지 않는 겸손함과 당당한 자신감을 두루 갖추게 됐다. 시합에서 대활약을 하고도 자신을 낮출 때가 많지만, 본인에게 삿대질하며 호통치는 전임 주장에게는 똑같이 화를 내며 맞대응한다. 손흥민의 아버지는 유소년 선수들에게 '남자는 자신감'이라고 가르친다. 한국에선 별일 아니지만, 영국이었다면 성차별로 비판받았을 언행이다. 고전적인 아버지와 반대되는 환경에서 성장한 손흥민이 현대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가졌을지 궁금해진다.

/장제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