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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이란 왕의 아버지에게 붙이는 칭호이자 군호다. 적장자가 아니라 방계 혈통이 왕위를 잇게 되면 왕의 생부가 대원군이 되는 것이다. 조선 역사에서 대원군은 모두 4명이 있었으나 대원군 하면 바로 흥선 대원군 이하응(1821∼1898)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근세사의 중심에 있었던 인물이다. 세도정치 혁파와 과감한 인재 등용 등의 정치개혁·쇄국정책·경복궁 중건·서원철폐 등 대원군의 정치와 치적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문화예술인으로서의 대원군의 면모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대원군은 정치인이기 전에 빼어난 예술인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제일가는 묵란의 대가로 그가 그린 난초 그림을 대원군의 호를 따서 '석파란(石坡蘭)'이라 했다. 난초 등의 문인화에서 일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알게 모르게 우리 근대예술사에 직·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거나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대원군을 따르던 최측근인 천희연·하정일·장순규·안필주를 '천하장안'이라고 했는데, 이 중에서 안필주의 아들이 국학자로 유명한 자산 안확이다. 안자산의 '조선문학사'·'조선문명사'·'조선무사영웅전' 등은 인문학 연구자들에게 잘 알려진 명저다.

'가곡원류'로 유명한 박효관, 안민영은 대원군의 식객으로 흥선대원군에게 각별한 총애를 받았던 예인들이었다. 특히 박효관의 가곡창은 하준권과 하규일에 이어지며, 하규일의 음악은 한국 국악학자로 '한국음악사'와 '국악개론' 등을 남긴 장사훈 서울대 국악과 교수에게로 이어진다. 또 서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대원군의 석파란은 사제관계는 아닐지라도 독립운동가이자 서화가인 차강 박기정, 무위당 장일순을 거쳐 시인 김지하에게까지 그 맥이 이어진다.

흥선대원군의 묘소는 고양군 공덕리와 파주군 대덕리를 거쳐 남양주 창현리로 이장됐는데, 최근 경기도가 남양주 대원군 묘소인 '흥원'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새롭게 단장하여 시민들에게 개방한다(10월13일자 2면 보도). 대원군은 권력자요, 정치인이기 이전에 빼어난 문화의식과 소양을 가진 예술인이었다. 현재 우리 정치 리더들 가운데서 대원군만큼의 문화 의식과 수준을 지닌 인물로 과연 누구를 꼽을 수 있을까. 문화 예술에 대한 품격을 갖춰야 정치적 품격도 따라 나오는 법이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