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전국 지방자치단체들이 도토리와 밤 지키기 전쟁 중이다. 야산마다 도토리, 밤 불법 채취 단속을 경고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고, 공무원들이 수시로 단속에 나선다. 다람쥐가 홍보대사다. 현수막엔 '다람쥐의 겨울양식'을 강조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도토리의 어원은 돼지의 옛말인 '돝'이다. 정작 도토리 마니아는 돼지이다.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도토리를 먹여 키운 이베리코 돼지는 맛 좋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다람쥐는 도토리 보다는 고소한 견과류나 귀뚜라미 같은 작은 곤충들을 즐겨 먹는다고 한다. 하지만 겨울엔 사정이 다르다. 먹을 게 도토리뿐이다. 다람쥐와 야생동물에게 도토리와 밤은 구황작물이다. 이를 사람들이 생계와 재미로 다 거둬가면 숲 속의 생명들은 기아에 허덕인다.
인간의 욕심에 무너지는 생태계는 숲뿐이 아니다. 세계 철새의 날(10월 둘째 주 토요일)인 지난 14일 인천 송도 갯벌에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갯벌에 묻힌 칠게잡이 어구를 제거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갯벌에 흔한 엄지 크기의 칠게는 달고 고소한 맛에 서민들의 식재료로 각광받았다. 튀김, 볶음, 조림 등 조리법도 다양하고 통째로 한입에 먹기도 쉽다.
사람만 칠게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겨울 철새에게도 인기 메뉴다. 인천 갯벌은 전 세계에 6천여 마리뿐인 저어새의 고향이자, 멸종위기종 알락꼬리마도요를 비롯한 철새들의 휴게소다. 사람이 칠게를 다 잡아먹으면 저어새의 번식과 성장이 힘들고, 철새들은 푸드코트가 사라진 휴게소에서 배를 곯는다.
사람들이 칠게 씨를 말리는 방식도 잔인하다. 가로로 절단한 PVC 파이프 양 끝에 바구니를 달아 갯벌에 묻는다. 옆걸음만 가능한 탓에 칠게는 파이프에 빠지면 스스로 통 속에 모여 수거된다. 기발하지만 불법 어구다. 인천 갯벌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 등재를 권고하는 천혜의 자원이다. 칠게는 갯벌 정화의 주역이자 먹이사슬의 출발점이다. 갯벌의 도토리 칠게가 사라지면 갯벌 생태계가 무너지고 철새의 멸종도 빨라진다.
사람이 도토리와 칠게를 독차지하면 숲과 갯벌 생태계가 무너진다. 다람쥐와 새들이 사라진 숲과 갯벌이 생태계의 일원인 인간에게 좋을 리 없다. 인간의 욕심으로 씨를 말린 생물들이 한두 종(種)이 아니다. 멸종시키다 보면 인간도 멸종될 날이 온다. 다람쥐와 새들의 양식 정도는 남겨둘 줄 알아야 한다.
/윤인수 주필